‘하~얀 미인’ 욕구 충족 화장품 역사 300년 시세이도

시세이도 최초의 화장수 오이데루민

[Brand Story] ‘하~얀 미인’ 욕구 충족 화장품 역사 300년 시세이도

고대 중국과 일본에선 ‘흰 얼굴 하나면 결점 셋이 감춰진다’는 속담이 전해져 내려 올 정도로 여성들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하얀 피부를 동경해왔다. 실제 중국에서는 창백한 혈색 연출을 위해 진주 가루를 먹었고, 일본의 경우 치아를 검게 물들여 얼굴을 하얗게 보이도록 했다. 명성황후가 미백분에 함유된 납 성분으로 얼굴이 항상 창백했다는 기록도 있다. 오래 전부터 하얀 피부를 갖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온 아시아여성들이, 피부색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얻도록 기여한 화장품. 그 중심에 시세이도(Shiseido)가 있다.

시세이도가 1897년 출시한 ‘오이데루민(Eudermine)’은 ‘제품을 바르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하얘진다’는 광고문구와 함께 화제를 모았다. 시세이도는 미백기능에 대한 소비자 욕구를 파악해 연구에 매진했고, 20년 후 미백전문 화장수 ‘과산화수소 큐컴버(Hydrogen Peroxide Cucumber)’를 시작으로 다양한 미백제품을 선보였다.

1872년 서양식 조제약국서 출발

그중에서도 1990년 출시된 미백제품 ‘화이티스 에센스(Whitess Essence)’는 10년간 총 2000만개 이상 팔릴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최근의 ‘화이트 루센트(White Lucent)’ 라인은 얼굴 노란빛까지 감소시키는 아시아 여성 ‘맞춤형’ 미백화장품이다. 1897년 ‘오이데루민’부터 2014년 ‘이부키(IBUKI)’ 라인까지 소비자에게 꾸준히 사랑 받는 시세이도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시세이도(자생당, 資生堂)는 서양문물이 활발히 들어오기 시작한 1872년, 일본 최초 서양식 조제약국에서 출발했다. 창립자 후쿠하라 아리노부 (Fukuhara Arinobu, 福原 有信)는 동양의 지(知)와 서양의 미(美)를 융합해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보급하고자 했다. 시세이도란 이름은 중국 고전 <역경>에 나오는 ‘자생(資生)’의 일본식 발음(Shi Sei, 시세이)에 착안해 탄생했으며 이는 대지의 덕으로 모든 사물이 생성된다는 의미다. 시세이도 약국은 ‘후쿠하라 위생치약(1888)’을 개발해 두각을 나타냈다. 구운 소금이나 파우더 형태의 치약만 존재하던 시절, 후쿠하라 치약은 페이스트형으로 부드럽고 안전한 제품이었다. 고가품이었지만 모조품이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시세이도 한국 모델 이하늬가 손에 든 UV프로텍티브 컴팩트 파운데이션은 독특한 파란색 케이스와 뛰어난 자외선 차단 기능으로 사랑 받고 있다.

초창기엔 의약품과 화장품 분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후쿠하라 아리노부의 아들이자 초대 사장인 후쿠하라 신조에 의해 본격적인 화장품 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미국 콜롬비아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한 신조는 서양 근대 화장법을 받아들여 다양한 화장품 라인을 확충해 나갔다. 국화·등나무·앵초 등 일본 꽃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첫 번째 향수 ‘하나쯔바키(동백꽃, Hanatwsubaki, 花椿)’는 수입품이나 모조품밖에 존재하지 않던 시절, 일본을 대표하는 고유 향수였다. 그는 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물 그릇에 떠 있는 동백꽃을 형상화한 로고도 직접 제작했다. 신조 사장은 일본 기업 최초로 오늘날의 디자인 부서인 의장 부서를 신설해 디자인학교 학생들과 젊은 예술가들을 고용했고, 광고 포스터와 홍보물, 포장지와 상점간판 등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시세이도는 문화예술 사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100년 이상 앞선 행보였다. 신조의 미적 감각과 공격적인 경영은 회사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시세이도는 1997년 입점한 한국을 포함, 동남아시아·유럽·미국 등 전 세계 88개국에 진출해 2012년 ‘Women’s Wear Daily’ 기준, 글로벌 5위 화장품 브랜드로 우뚝 섰다.

시세이도의 또다른 강점은 적극적인 마케팅이다. 1922년 미용 잡지를 발간해 근대 여성들의 패션·헤어 등 전반적인 스타일링을 제안했으며, 이를 무료로 배포해 대중의 관심을 얻었다. 1923년에는 자사 제품만을 판매하는 전문 체인스토어를 개설해 고객에 다가갔다. 1934년에는 오늘날 뷰티 컨설턴트의 시초인 ‘미스 시세이도(Miss Shiseido)’ 9명을 선발해 뷰티·미용 교육뿐만 아니라 현대 여성이 갖춰야 할 전반적인 교양을 전파했다.

시세이도 뉴질랜드 매장. 시세이도는 전 세계 88개국에 진출해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다양한 사회공헌, 최고윤리기업 선정

한편 시세이도는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전 세계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부터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한다’는 뜻인 ‘오모테나시’ 정신에 따라 전 세계 88개국에서 핸드마사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고, 올해 한국 시세이도는 ‘五 LOVE(오감) 캠페인’을 테마로 고객들에게 서비스하고 있다. 시세이도 직원들은 여성·환경·문화 세 분야에 걸쳐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봉사활동에 참여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시세이도는 글로벌 공헌을 통해 미국의 기업윤리 연구소 에티스피어 인스티튜트(Ethisphere Institutue)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Worlds’ Most Ethical Companies)’으로 3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시세이도의 지향점은 ‘그레이스풀 에이징(Graceful Aging)’이다. ‘아름답고 건강하게 나이를 더해 가며 젊고 건강하게 행복한 인생을 즐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미, 주근깨, 주름, 탈모, 자외선차단 등 노화방지를 위한 4가지 테마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1989년 하버드의과대학과 연계해 ‘하버드대학 피부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는 피부에 존재하는 면역세포와 신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최초로 증명했다. 하버드대학 피부과학연구소 이외에도 일본, 미국, 유럽 등에 있는 10여개 연구시설은 ‘그레이스풀 에이징’에 기여하고 있다.

일본 최초의 서양식 조제약국에서 출발해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난 시세이도. 고객 니즈를 읽는 통찰력과 시대를 앞서나간 제품, 그리고 100여 년간 지속된 ‘미백연구’로 화이트닝 분야에서 지금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깨끗하고 건강한 피부를 갖고 싶은 여성의 로망을 실현시키며 쌓아온 명성이 어디까지 뻗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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