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동경심 파고든 샹그리라 호텔
[Brand Story] 오리엔트 동경심 파고든 샹그리라 호텔
티베트에 대한 서양인들의 동경심은 각별하다.책과 영화가 큰 반향을 일으킨다든지 리처드 기어 같은 유명인들이 티베트 불교에 심취하는 모습이 그 예다. 오리엔트에 대한 로망과 이상향을 찾는 신비주의가 만들어낸 일종의 문화현상이다.그런 성향을 촉발한 방아쇠는 1933년 발표된 소설이었다.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쓴 이 대중소설은 고대 티베트 문서에 쓰여 있다는, 세상과 격절된 지상낙원 ‘샹그리라(Shangri-La)’를 그리고 있다.
샹그리라는 분명 픽션임에도 그곳을 찾는 탐구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그 말 자체가 유토피아, 엘도라도, 에덴동산, 무릉도원 같은 이상향의 또 다른 이름이 됐다. 여기가 바로 그곳이라고 주장하는 지역도 여럿 나왔다. 파키스탄 북부 훈자 계곡, 영험의 쿨룬(崑崙)산 지대, 티베트가 속한 중국 시짱자치구, 윈난·쓰촨성 일대다. 관광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자 윈난성 중뎬(中甸)현은 지난 2001년 마을이름을 아예 샹그리라(香格里拉)현으로 바꿨다.
샹그리라 호텔은 바로 이런 감성대를 브랜드화 했다. 신비롭고 아련한 안식처 이미지를 내세워 아시아에 본사를 둔 세계최고 호텔 체인으로 발돋움했다. 샹그리라 이름을 단 호텔이 처음 싱가포르에 등장한 것은 1971년 4월이었다. 설립자는 이후 동남아 최대 갑부로 떠오른 로버트 궉(郭鶴年·90).
로버트 궉은 중국 푸젠성 출신 말레이시아 화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전후 곡물거래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말레이시아 정부를 끼고 사탕수수 재배·정제·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1960년대 인도에서 싼 값에 사탕수수를 대량 사들인 뒤 가격폭등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큰 돈을 벌었다. 당시 사탕수수 정제량 150만t은 전 세계 생산량의 10%, 말레이시아의 80%에 해당해 ‘설탕왕(sugar king)’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후 광산·금융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힌 그는 대부분의 부동산개발 투자자들이 그렇듯 호텔에 손을 댔다. 그러나 호텔을 금융상품처럼 사고 파는 개발업자들과 달리 로버트 궉은 싱가포르 1호점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호텔 체인을 일궈냈다. 로버트 궉은 중국 후룬(胡潤)연구소가 발표한 ‘2014년 세계 부자 순위’에서 부동산 부문 4위(자산 평가액 160억 달러)에 올랐다. 1위는 리카싱 홍콩 청쿵 부동산그룹 회장(330억 달러), 2위는 중국 최대 갑부인 왕젠린 완다 그룹 회장(250억 달러)이다.
샹그리라는 현재 중국 본토 34곳을 포함해 전 세계 81곳 호텔을 거느리고 있다. 전체 객실수는 3만4000 여 개. 호텔 수보다는 각 도시의 랜드마크라는 더 의미가 있다. 오는 5월6일 오픈 예정인 영국 런던 샹그리라 호텔은 샤드 런던브리지(The Shard) 34~52층에 들어선다. 306m 높이, 87층 샤드는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유럽연합(EU) 통틀어 최고층 빌딩이다. 39층 특급 스위트룸은 180도 각도로 런던 전경을 즐길 수 있다. 객실요금은 450 파운드(약 80만 원)부터 시작된다. 런던 샹그리라는 파리, 이스탄불에 이어 샹그리라의 3번째 유럽 호텔이다. 카타르 정부가 공동소유주인 샤드에는 알자지라 방송 스튜디오를 비롯해 유수 기업이 속속 입주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 샹그리라 호텔도 서부 캐나다 최고층 빌딩(201m 62층)으로 지어지면서 밴쿠버 다운타운 스카이라인을 새로 그렸다. ‘리빙 샹그리라’라 명명된 이 호텔은 2009년 오픈 이래 눈 덮인 연봉을 조망하는 독보적인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샹그리라 호텔은 미국과 한국에는 아직 진출하지 않았다. 싱가포르 샹그리라는 43년이 지난 지금도 747개 객실을 갖춘 최상급 호텔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6만㎡ 정원을 갖춰 싱가포르 대표공원인 ‘보태니컬 가든’에 이은 제2의 가든 명소로 꼽힌다.
정부간 안보회의에 호텔이름 붙어
브랜드 네임으로서 ‘샹그리라’의 진가는 국제적으로 입증됐다. 28개국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이 참석하는 정부간 안보포럼을 ‘샹그리라 대화(Shangri-La Dialogue)’라 통칭한다. 2002년 첫 회의가 싱가포르 샹그리라 호텔에서 열린 이래 매년 이곳에서 개최된 데서 나온 명칭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주최하는 이 포럼 공식명칭은 아시아안보회의(The IISS Asia Security Summit)다. 하지만 샹그리라 대화 또는 SLD란 약칭이 더 유명하다. 그래서 주최 측도 아예 샹그리라 대화란 별칭을 공식명칭보다 더 많이 쓴다.
주요 국제행사에 지역명이 붙는 일은 흔하다. 다보스 포럼, 보아오 포럼, 우르과이 라운드 등이 그렇다. 그러나 정부간 공식회의에 호텔이름이 붙은 경우는 흔치 않다. 샹그리라가 그만큼 좋은 작명임을 반증한다. 지난해 12회를 기록한 샹그리라 대화는 갈수록 그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본떠 ‘중동판 샹그리라 대화’라는 중동지역 안보회의가 생기기도 했다. 이 회의는 개최지인 바레인 수도 마나마(Manama) 이름을 따 ‘마나마 대화’라 불린다.
샹그리라 호텔은 범아시아적이다. 본사를 홍콩에 둔 반면 소유주는 말레이시아인,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는 싱가포르다. 자회사 샹그리라 아시아가 홍콩과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돼 있다. 샹그리라는등 언론과 관련기관 조사에서 여러 차례 ‘아시아 최고 호텔 브랜드’로 평가 받았다. 광저우 샹그리라 호텔은 힐튼, 그랜드하얏트, 리츠칼튼, 만다린 오리엔탈 등과 나란히 도시별 최상급 호텔로 선정됐다. 샹그리라 호텔은 올해 몽골 울란바토르, 인도 방갈로어, 카타르 도하 등 12곳에 새로 문을 연다. ‘돈 되는’ 도시를 향한 샹그리라의 발걸음은 가속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