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의 東北亞] 한국을 바라보는 조선족의 시각
여전히 먼 나라 한국… 노동부는 조선족을 외국인으로 취급????
냉전시대 조선족이 바라보는 한국은 미제국주의 수하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막연한 남조선이었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굳게 닫혔던 국문이 빠끔히 열려 한국 소식을 풍월로 듣게된?뒤로는 조금 잘사는 나라로 인식됐지만, 여전히 막연한 남조선이라는 시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60~70년대 가만가만 라디오를 듣던 시절 한국이란 나라는 말투가 부드럽고 간을 녹일 듯 고운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부러울 뿐이었다.
1992년 한중수교를 계기로 가짜 초청이 성황을 이루며 많은 조선족이 한국나들이를 하게 됨에 따라 막연했던 남조선은 점차 ‘한국’으로 변하면서 조선족에게도 한발 가까이 다가오게 되었다.
한국인과 조선족이 접촉하게 된 초창기엔 이념과 사상의 갈등이 큰 작용을 하지 않았고 서로?동족의 입장에서 기대치가 컸었다. 그런데 희망이 크면 실망이 큰 법. 한국인은?재미교포나 재일교포가 갖고 있는 고국관으로 조선족을 바라보았고 그것은 영 빗나갔다. 이를테면 중국과 한국이 축구경기를 하면 조선족이 중국을 응원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실망감이 컸다.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한국인은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만 알 뿐 이 세상에는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크다’는 또 다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해 더욱 서운해했다.
조선족의 한국 나들이가?늘고,?한국에 정착하는 수가 증가하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바람이 20년이 넘었고 한국에 장기체류하는 조선족이 50만명(국적 취득자 포함)이 되지만 한국을 바라보는 조선족의 시각은 큰 변화가 없다.
중국과 비교하며 한국을 하찮은 시각으로 보는 조선족도 문제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한국측의 이유를 살펴보자.
이른바 한국인이 조선족을 상대로 벌인 초청사기는 조선족사회 전반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조선족이 한국인을 영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숱한 돈을 들여 어렵사리 한국땅을 밟았으나 불법체류라는 딱지를 쓰고?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됐고, 길가에서 경찰이라도 눈에 띄면 일제시대 조선인이 일본순사를 만난 듯 가슴이 두근거리는 삶을 보내게?돼 한국은 믿지 못할 나라로 각인되었다.
김해성 목사의 지적에 따르면 “고국에 찾아온 동포를 불법체류자라며 강제추방시키는 나라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한국 뿐”이다. 또 10년간 동포를 불법체류로 방치한 나라도 아마 한국뿐일 것이다. 재외동포비자를 부여하지 못해 임시방편으로 채택한 방문취업비자(H-2)가 실시돼 자유왕래가 이뤄졌지만 노동부는 조선족을 100% 외국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2008년 1월부터는 재외동포비자(F-4)가 실시되어 조선족유학생출신이 한국에 체류할 수 있게 됐다. 그 이전엔 석·박사를 받아도 모두 중국에 돌아가야 했으니 아마 동포 인재를 체류문제로 본국에 돌려보낸 나라도 한국뿐일 것이다.
최근 몇년새 체류가 조금 안정되어 한국에서 가게도 운영하고, 전세로 근사한 집도 구하거나,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는 등 정착해보려던 동포들이 10년 전 위명여권이 문제가 되어 강제퇴거 조치를 받고 있으니 한국이란 나라에?정을 붙이려고 마음 먹었다가도 쓰나미가 닥친 듯 사라지고 만다.
한국 탓만이 아니라 조선족 자체가 스스로 반성해 볼 문제도 있다. 한국체류가 10년, 20년이 넘어도 조선족이 진정 한국을 고국, 한국인을 동족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중국인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다 보니 친근감보다 오히려 한국을 폄하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문화와 한국인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이 툭하면 중국과 비교하면서 한국을 하찮게 본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돈도 벌고 삶의 질을 추구하며 잘 살고 있으면서도 한국에 대해 지나치게 흉을?보기도 한다. 정작 본국에 돌아갈 생각도 없으면서 한국을 흉보고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는?것은 아이러니다.
재한조선족의 올바른 한국정착은 갈 길이 멀고도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