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의 東北亞] 생식(生殖)문화로 보는 단군신화 ⓛ

단군상 <사진=http://sinjeom.co.kr>

단군신화에 환웅이 풍백 운사 우사를 거느리고 태백산정에 내려왔다는 대목이 있다. 여태껏 한국의 수많은 학자가 단군신화의 연구에 매달렸으나 이 풍백 운사 우사에 관한 해석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가. 왜 구름과 비에는 ‘사(師)’를 붙인 데 비해 바람에는 ‘백(伯)’을 붙였는가는 것이고,
나. 풍백 운사 우사의 기록이 도교의 영향을 받은 산물인가? 아니면 한민족의 고유한 원시종교신앙에서 비롯된 산물인가는 것이요,
다. 풍백 운사 우사가 천부인 3개를 뜻하느냐 마느냐는 것이고,
라. 거의 모든 단군신화 연구학자들이 풍백 운사 우사를 농경문화의 연관성만 지적했을 뿐 생식숭배문화와의 연관성에 관해선 일언반구의 언급조차 없다는 것이다.

<주례·천관편>에 바람·구름·비에 관한 내용이 많은 것을 미루어 보아 주대에 이르러 바람·구름·비를 관장하는 전문 관직을 중요시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왜 구름과 비에는 ‘사(師)’를 붙인 데 비해 바람에는 ‘백(伯)’을 붙였을까?

‘사’는 군대의 한 개 직급을 지칭하는 말인데 대개 3천의 군대를 이끄는 장수를 사장이라 부른다. ‘사’는 또 ‘이끌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대표적 사례로서 기독교에서 설교를 담당하는 자를 ‘목사(牧師)’라 부른다는 것이다. 목사는 본래 양 떼를 인솔하는 양치기꾼을 뜻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어찌 되었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구름과 비를 관장하는 자에 ‘사’를 붙이고 바람을 관장하는 자에 ‘백’을 붙인 것이다.

‘백(伯)’은 ‘백(白)’에서 유래되었으며 또 ‘백(伯)’은 ‘패(覇)’와 같은 글자이다. 이에 관해선《설문》에 해석되어 있다. ‘패’는 모든 것을 독점하다, 제패하다, 관장하다, 지배하다, 주재하다 등등의 뜻으로 쓰인다.

구름과 비에 ‘사’를 붙이고 바람에 ‘패’를 붙인 것은 고대사회에서 구름이 생기고 또 구름이 비를 내리게 하는 근원은 바람에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대사회에 있어서 세상 만물의 움직임은 전부 바람이 조화를 부린 결과라 보고 바람은 우주의 본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주대에 이르러 바람을 구체화하고 또 바람을 고상하게 표현한 ‘기(氣)’란 개념이 전반사회에 뿌리내리면서 동양에서는 모든 사물을 ‘기’의 현상으로 풀이하려고 애썼다. 중국에서는 ‘도(道)’를 우주의 본체라 인식했는데, ‘도’는 곧 ‘기’라고 해석한다. ‘기’는 곧 바람이며 바람이 곧 ‘기’이다. 그러므로 풍백을 단순히 고대사회에 있었던 하나의 관직에 불과했던 것으로만 보지 말고 세상 만물을 주재하고 인간사회의 만사를 주재하는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존재로 인식해야 마땅하다.

풍백 운사 우사라는 개념이 도교에 많이 등장하는 것만은 사실이나 그렇다 해서 임동권 선생처럼 “단군신화 가운데서 삼위태백, 풍백 운사 우사를 거느린다든가, 천부인을 갖고 왔다는 것은 도교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이는 오류라 생각한다. 만약 임동권 선생처럼 한국의 적지 않은 학자들의 이 면에 대한 관점에 따라 한민족의 역사, 종교, 문화를 풀이한다면 그 뿌리는 전부 중국에 귀속될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도교경전에 신선이란 말이 헤아릴 수 없이 등장하고 또 도교가 추구하는 최고 경지가 바로 득도성선이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신선도가 도교에서 유래된 것일까? 아니다! 신선도는 본래 동이족 사회에서 먼저 생겨난 것이지 결코 중원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황제(黃帝)가 중원의 패자로 있을 때 동쪽을 유람하였는데 “화서국(華胥國)이 신선국이다.”라는 <헌원본기(軒轅本紀)>의 기록이 말해주듯이 신선도는 동이족 사회에서 먼저 생겨난 것이다.

동이족 사회에 이미 신선도가 널리 유전되어 있었다면 동이족 사회에 이미 바람숭배신앙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동이족이 자연을 관찰하면서 당연히 구름과 비의 상생근원이 필연적으로 바람과 그 어떠한 내재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풍백 운사 우사의 언급이 결코 도교의 영향을 받아 비롯된 것이라고 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거꾸로 마땅히 한민족의 고유 신앙에서 비롯된 산물이라 인식해야 한다.

다음 천부인 세 개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느냐의 문제인데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최남선의 무구(巫具)인 신경(神境)·신모(神帽)·신검(神劍)이란 설, 장덕순의 신·대자연·인간의 삼계를 말한다는 설, 유동식의 하늘·땅·저승을 지배하는 신기(神器)라는 설 등등이 많다. 이외의 많은 학자가 풍백 운사 우사가 곧 천부인 3개를 의미한다고 결론짓는다. 필자는 도교문헌을 살펴본 결과 천부인 3개가 곧 풍백 운사 우사를 지칭한다고 생각한다.

그다음 현재까지의 단군신화의 분석에 대한 글들을 일별해 본 결과 풍백 운사 우사는 고대사회의 관직 혹은 신직이었다고만 언급했으며 또 그 관직 혹은 신직이 농경문화의 필수적인 요소였다는 결론뿐이다. 이는 매우 편협한 분석이며 인식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대 한민족의 역사는 산식숭배문화(産食崇拜文化)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생식숭배 문화도 있었고 또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산식숭배문화보다 생식숭배문화가 비중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대를 사는?지식인들, 특히 한국학자들은 생식숭배문화에 대대 언급하기를 꺼리며 또 이 면에 대한 지식도 매우 결핍하다. 그리하여 고대 한민족의 정신적 문화를 분석하면서 거의 대다수가 산식숭배문화로만 풀이하고 있다.

성녀의 유래를 살펴보면 생식숭배문화가 고대사회에서 얼마나 비중이 컸는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인의 의식 속의 성녀 이미지는 금욕적이고, 교양적이고, ‘남자를 모르고’, 세속풍진(風塵)에 물들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고, 지조를 지키는 깨끗한 여성이다. 하지만 현대인이 성녀의 유래를 알게 되면 이러한 성녀의 이미지가 많이 다운될 뿐만 아니라 놀라 자빠질 수도 있다.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쳐들어갔을 때, 이미 그곳 토착민(土着民)들은 바알신앙을 갖고 있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로 불리는 농사를 지어먹을 만한 가나안땅이 있다. 그런데 그곳은 사막에 둘러싸여 내내 가뭄이 심하다. 가뭄이 심하면 농사가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바알신앙을 갖게 되었다. 즉 남정네들은 바알림, 아낙네들은 바알을 상징하고 교회에 모여 열심히 성교한다. 왜 그랬을까? 남자의 정자는 비를, 여자의 몸은 밭을 상징하고 열심히 또 많이 성교하면 풍년이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농경으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이보다 더 성스러운 일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성교행위는 성사(聖事) 중의 으뜸으로 꼽히는 성사였다. 그래서 어떤 여성들은 항시 교회에서 기다리면서 장정들이 찾아오면 열심히 성교를 제공하는 성스러운 사명을 수행한다. 물론 아무런 금전거래도 없었으며 성교를 더 많이 하는 여성이 성녀 중의 성녀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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