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의 東北亞] 법보다 예를 중시하는 한국과 중국

법(法)이란 글자는 죄인을 가죽포대에 담아 강물에 띄워 보내는 데서 유래되었다. 갑골문에 ‘법’이란 글자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 ‘법’이 생겨난 지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기자가 ‘팔조법’으로 조선을 다스렸다는 역사 자료도 있다. 허나 팔조법은 형벌에 관한 것일 뿐 모세의 십계명처럼 형법과 민법이 구비된 그러한 ‘법률’이 아니다.

법률은 법이 율(律)로서 하나의 체제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학자들은 고대 중국에 법은 있어도 법률은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주나라 초기 주공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제도 등 다양한 체제를 담은 내용의 책 제목을 <주례(周禮)>라 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중국은 법보다 예를 더 중시해왔고 심지어 법에 해당되는 것마저 예로 취급했다.

그러므로 중국역사는 법치가 아니라 예치로 흘러왔다. 물론 한반도 역사도 법치가 아닌 예치의 역사이다. 더욱이 우리민족은 예와 법의 구분이 명확치 않았다. 이를테면 ‘저 집은 법이 많다’, ‘중국인은 한국인보다 법이 더 많다’는 말에서 법은 풍속습관을 뜻하거나 예의, 예절을 의미한다.

중국과 한국이 법치가 아닌 예치의 역사로 흘러오게 된 이유는 두 나라가 모두 정의 문화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은 딱딱하고 무시무시해서 인간의 정을 메마르게 하는 반면에 예는 정의 문화와 부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인과 한국인은 법치보다 예치를 더 선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주나라 때 주공이 세운 ‘주례’ 때문에 사회는 정의 문화로 전환됐고, 법이 바르지 못해 천하가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시기를 춘추라 하는데 저마다 천하를 바르게 하는 처방을 내놓게 되었으며, 이를 제자백가시대라 한다.

제자백가 중에 한비자, 상앙 등을 비롯한 법가가 있었다. 이들 학파는 인의예지신을 주장하는 유교 정의 문화가 천하를 구할 수 없으므로 강력한 법을 제정하여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가의 대표적 인물인 상앙은 그의 변법내용을 다음과 같이 제정했다.

가. 인민을 십, 오의 단위로 조직하여 연대책임을 지게 한다.
나. 간사(奸事)를 관에 고발하지 않고 숨기는 자는 엄형에 처하고 간사를 상고하는 자는 적의 목을 벤 것과 동등한 상을 준다.
다. 남자가 둘 이상 있는 집은 분가독립시킨다. 만약 분가를 하지 않으면 부세를 두 배로 징수한다.
라. 군공이 있는 자는 그 정도에 따라 작위를 수여한다.
마. 사사롭게 싸움을 하는 자는 경중에 따라 벌을 준다.
바. 농사와 방직을 본업으로 삼아 일가 협력하여 곡식과 비단을 많이 산출하는 자는 부역을 면제한다.
사. 상공업의 이익에 힘쓰거나 또 게으름을 피워 가난하게 된 자는 모두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아. 종실의 귀족이라도 군공이 없으면 속적에서부터 제외시켜 버린다.
자. 존비와 작질(爵秩)의 등급을 명료하게 서열지우고 그 서열에 따라 전택(田宅)의 명의가 있게 하고 또 신첩(臣妾)·의복도 그 가격(家格)에 따라 질서지운다.
차. 군공이 있는 자는 영화를 누릴 수 있으나 군공이 없는 자는 재력이 있어도 화려한 생활을 못하게 한다.

상앙이 제정한 이 변법내용을 보면 법률의 맛이 난다. 진(秦)나라는 법가들의 이러한 변법들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고 진시황은 이를 토대로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다.

허나 진시황이 천년만년을 이어갈 것이라는 진제국은 16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너무 딱딱하고 정이 메마른 법가 사상과 제도에 사람들이 지쳐버려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나라 초기에는 법가를 버리고 무위를 주장하는 도가로 치세하여 태평성세를 이룬다. 무제 때부터는 유교를 국교로 하여 또 다시 예치사회로 진입한다.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천하가 혼란하고 이민족 정권이 병립하여 법가가 설 틈이 없었다. 당나라 초기에는 도교로, 중기부터는 불교로 나라를 다스렸다. 송나라 때 왕안석이 변법을 시도해보았으나 능지처참을 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후 청 말까지 유교가 득세하여 또 다시 예치국가로 흘러왔다.

중국과 조선은 법치가 아닌 예치로 흘러왔기 때문에 현재 국민들은 법제의식이 매우 희박하다.

그렇지만 법치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으나 정이 없는 두뇌 문명에 속하고, 예치는 단점이 많으나 정이 있는 마음의 문명에 속한다. 사회발전추세를 보면 법치가 불가피하고 역사적으로 정서적으로 보면 예치가 마음에 와 닿는다.

이 법치와 예치의 갈등은 중국과 한국에서 앞으로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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