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의 東北亞] 생식(生殖)문화로 보는 단군신화②

생식(生殖)문화로 보는 단군신화 ①에 이어

성녀란 이렇게 성스러운 사명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던 것이다. 한민족은 조선시대까지도 성황당에서 풍년을 빌기 위해 남녀가 모여서 성교행위를 감행했다.

현재 개별 학자들은 옛날 성황당은 매음굴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문화에 대한 왜곡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매음행위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뿐더러 성스러운 일을 수행한다고 믿었었다. ‘중국신화연구’의 저자 오천명(吳天明)은 “일본의 농촌에서는 지금도 모내기가 끝나면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논두렁 위에서 청년남녀들이 성교를 행한다”고 말했다.

19세기 철학 거장인 헤겔은 <미학>에서 “인도인은 거의 모든 사회생활에 있어서 ‘성’을 떠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한마디 지적을 통해 인도인의 생식숭배의식이 얼마나 강력한 지를 알 수 있다.

고대사회 인류에게 있어서 생식숭배문화는 보편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던 것이 사실이다. 중국학자 조국화 선생은 <생식숭배문화사상>이란 저서에서 “중국문화는 생식숭배문화를 핵심으로 형성되었다”고 지적했고 현재 중국학계에서는 이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고대문화도 생식숭배문화의 각도로 해부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한민족의 문화 본질을 캐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일상생활언어 중 남녀의 교합을 가리켜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눈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이 말이 그냥?생겨난 것이 아니고 또 그냥 무의식 중에 중국인의 표현법을 빌려 쓰는 것도 아니라 본다. 이 말은 곧 고대 한민족의 생식숭배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원시 인류(특히 동양인)는 인체구조가 자연의 구조체계와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모든 자연현상을 인체의 원리와 연관해 풀이했다. 이 과정에서 음양사상이 발달하게 됐다.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다.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다. 구름은 양이고 비는 음이다. 따라서 구름은 남자를 상징하고 비는 여자를 상징한다. 운우지정을 나눈다는 말은 곧 자연의 원리를 인간사회에 끌어들여 지어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상식적으로 구름이 비를 생기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구름과 비가 직접 남자와 여자의 교합과 같은 그러한 교합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골짜기나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 등이 신성한 곳이어서 대개는 용과 뱀과 같은 음기의 신체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골짜기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구름의 출입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고대인은 구름이 만들어지는 것도 산이요, 구름이 배회하다 다시 들어가는 곳도 산이라 믿었다. 구름이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비가 오고 밖으로 나오면 바람이 분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를 끈다. 환웅이 태백산정에서 풍백 운사 우사를 거느리고 있는 신앙형태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골짜기는 산과의 관계에 있어서 음양의 관계이다. 즉 산이 양이라면 골짜기는 음이다. 따라서 고대 한민족의 신앙의식에 있어서 골짜기는 곧 구멍을 뜻하며 그 골짜기로 이루어진 구멍은 생식의 구멍이다. 샘물이 골짜기에서 발원되는 것은 인간이 엄마의 ‘구멍’에서 태어나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며 동일한 구조이다. 고대 한민족은 이 골짜기 생식원리에 의해 마을을 골짜기에 형성시켰는데 그것이 곧 방곡이다. ‘곡(谷)’은 골짜기란 뜻도 있고 곡식을 의미한다. 이로서 우리는 곡식의 생산은 곧 대지의 ‘구멍’과 연관이 있으며 또 그것은 인간의 생식원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방곡문화는 한민족의 이제문화의 뿌리이자 한민족의 고대문화의 주체였다. 다시 말하자면 한민족의 문화는 곧 골짜기 문화이며 골짜기 문화는 결국 생식문화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끝으로 지적할 것은 풍백 운사 우사는 결코 단지 농경에 관한 관직 혹은 신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운사는 남성사회 일들을 관장하고 우사는 여성사회를 관장하며 풍백은 그 모든 일들을 통틀어 관장하는 최고의 관직 혹은 신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구름과 비에는 ‘사’를 붙인데 비해 바람에는 ‘백’을 붙였을 것이다.

복희씨가 인류에게 남긴 공적 중 ‘가취제(嫁娶制)’라는 것이 있는데 복희가 곧 남과 여를 맺어주는 ‘매신’이었다. 고대사회에서 ‘매신’은 하늘과 땅의 조화를 관장하고 만물의 생식을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에 신중에 으뜸으로 꼽히는 신이었다. 우리는 지고신이였던 복희가 곧 풍백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복희 어미인 화서씨는 풍산지역에서 살았다고 해서 성이 ‘風氏’이고 아들인 복희가 어미의 성을 따라 역시 ‘풍씨’이다. 흥미로운 것은 <설문>에 의하면 화서씨의 ‘華(화)’와 복희의 ‘伏(복)’은 모두 바람 ‘風(풍)’과 동일하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에서 단군신화의 풍백 운사 우사를 이해하고 풀이한다면 고대 한민족의 문화 본질과 정체성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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