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은 큰 잘못···조선족 전체로 확대해석 곤란”
중국동포의 한국행이 시작된 지 20여 년. 처음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왔을 때 모두가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타국에서 민족문화를 고스란히 지켜온 독립투사의 후손들에게 보내는 고마움의 눈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감정도 잠시. 중국동포들의 불법입국, 사기결혼, 불법체류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한국인에게 중국동포는 고민거리가 됐다.
살인사건 후 중국동포사회 자정 노력 활발
최근 수원 20대 여성 살인사건, 영등포 직업소개소 소장 살인사건 등 중국동포에 의해 연속해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중국동포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노골적으로 ‘조선족은 완전 범죄 집단이다’, ‘조선족은 한국말을 하는 중국인이다’, ‘조선족들은 취업 등 자신들이 아쉬울 때만 동포라고 말하지 보통 때는 자신들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족은 평소에도 칼을 품고 다니다 싸우면 살인하려 한다’ 등의 글을 올리며 흥분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한국에 있는 중국동포사회도 큰 충격을 받았다. ‘살인마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 놈 때문에 동포들이 피해를 보게 됐다’,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동포들은 제재를 받아야 한다’ 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포단체와 언론인들은 유가족을 위문할 계획을 논의하고 관할 경찰서와 치안 간담회을 갖기도 했다. 동포자율방범대를 강화 등의 대안도 제시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동포들 사이에 더욱 법을 잘 준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열 <동북아신문> 대표는 “동포 스스로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자신을 지키고 사회를 지키는 전제란 것 깨달아야 하며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가려면 민족·국적 초월해야
살인사건을 보도하면서 많은 언론들이 냉정함을 유지하며 객관적 보도 태도를 보였지만 피의자 이름 앞에 조선족을 강조하며 은연 중 중국동포 이미지를 나쁘게 부각시켰다는 지적이 많다.
평택대 다문화가족센터 신은주 소장은 “2006년 미국 버지니아 총기 난사사건의 경우 대다수의 미국 언론은 그를 미국인이라고 표현했지 ‘한국계 미국인’ 이라며 한국을 강조하지 않았다”며 “수원 살인사건 피의자의 경우 조선족이 강조되며 마치 모든 조선족은 위험한 사람들인 것처럼 각인시켰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다문화 정책과는 정반대로 가는 행태였다는 것이다. 신 소장은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국적이나 민족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조선족’ 명칭은?1952년 연변 등이 중국정부에 의해 조선족자치주로 지정되면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중국동포타운신문> 김정룡 주필은 “우리 부모님과 할아버지 세대는 조선인이란 호칭을 사용했고 지금도 연세 드신 분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195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조선족’이 익숙해 서로 이야기 할 때는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인이?자신들을 부를 때는 중국동포로 호칭해주길 바랐다. 중국 안에서 호칭되는 ‘조선족’은 이질감이 있고 뭔가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고 했다. 이동열 대표는 “중국동포 가운데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조선민족이라는 의식이 뚜렷하고?한국사회의 주류로 편입한 중국동포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동포들 체류불안·차별·소외감 느껴
이번 사건이 일어나게 된?근본적인 배경에 중국동포들은 소외감, 거주불안, 임금체불 등 차별문제 등을 거론했다.
정인갑 황하문화원장은 “정부가 다문화정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중국동포 사회에는 전혀 눈길을 안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원장은 “한국 정부가 중국동포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점이 많다. 외국인을 우대할 때는 중국동포를 외국인에서 제외시키고 동포를 우대할 때는 중국동포를 외국인이라며 제외한다. 재한 중국동포는 이렇듯 한국 시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한국정부는 중국동포에 대한 확고한 정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조선족은?중국 56개 민족 중 교육 수준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동포의 대부분은 방문취업(H-2 5년 만기) 비자를 받고 한국에 입국한다. 방문취업 비자는 36개 업종 밖에 취업할 수 없다는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중국동포가 3D 업종에서 헤매는 주요 원인이다.
김정룡 동포타운신문 주필은 임금체불 등에서 나타나는 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김 주필은 “내국인 노동자들도 동일한 문제를 겪지만 중국동포들의 경우 체불 임금을 받게 될 때도 가장 후순위로 받는 등 차별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위명여권으로 들어온 동포들이 많은데 이들이 불법체류해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중국동포들은 그들이 범법자이긴 하지만 생계형 범죄자란 인식 하에 합법적인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구제법을 요청하고 있다.
김정룡 주필은 “사기결혼, 불법체류 등이 줄어든 결정적인 이유가 방문자취업 제도 등이 생기면서부터”라며 “한국도 일손이 필요한 만큼 위명여권으로 들어온 중국동포들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조여권자?등 한국정부 인내심 갖고 도와줘야
체류와 관련해 여러가지 문제가 제기되면서 법무부는 10일 재외동포 자격부여 확대 정책을 시행했다. 대상자를 재외동포라 했지만 중국동포를 위한 정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용에 따르면 국내 이공계 전문학사 학위 소지자(2년제 전문대학 포함), 국내외 4년제 대학 이상 졸업자 및 국내 공인 국가기술자격증 소지자(기능사 이상)에게는 재외동포(F-4)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기존 방문취업(H-2)비자 소지자가 5년 만기가 돼도 기술자격증을 취득하면 귀국하지 않아도 된다.? 2012년 만기가 도래하는 방문취업 비자 소지자는 7만6,955명이다. 이중?80% 이상이?중국동포로 추정된다.
전 세계가 중국시장과 중국경제를 바라보고 있다. 중국동포는 어떻게 보면 중국의 연장선에 있고 또 시각을 바꿔 보면 한국과 중국의 연결선에 있다.
정인갑 황하문화원장은 “지금 한국은 중국시장을 외면하면 살아갈 수 없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한국정부는 정신을 차려 재한 중국동포를 똑바로 보고 그들을 포옹해 한국의 발전에 기여하게끔 조건을 마련해 줄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이동열 동북아신문 대표도 “동포들이 지역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정부와 국민들이 인내심 갖고 도와줘야 한다. 동포들로 하여금 자체정화기능을 키우도록 도우며 서로 신뢰를 갖고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