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의 東北亞] 장기로 읽는 한민족 정서

안산 다문화거리 공원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중국동포들. 중국동포들에게 장기는 대중적인 놀이다.

장기는 약 4000년 전 인도에서 발명되었다는 설이 있고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장기놀이가 있었다는 문헌기재가 있으며 한국장기는 중국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기가 초한(楚漢)대국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한나라 내지 삼국시대에 본격적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지금 유행되고 있는 중국 장기는 10세기 중엽 후주(後周)의 무제가 만든 것이라 하며 북송과 남송의 교체시기에 광범히 유행되었다.

한반도에서는 한사군(漢四郡) 때 한인(漢人)들이 대량 이주해 오면서 장기를 퍼뜨린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개로왕이 장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것이 최초의 역사기록이다. 고려 초부터 송나라 상인들이 들고 온 장기를 고려인이 대국하였다는 역사기록이 있다. 한국 장기는 조선시대에 양반이나 고관대작들의 전용놀이로 되면서 많이 발달하였고 중국 장기와 다르게 현행 놀이법도 조선시대 때 정착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국 장기가 민중의 민속놀이로 정착된 것은 해방 후의 일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장기가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것이지만 중국 장기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우리 민족정서에 맞게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중국장기판. 중국 장기는 한국 장기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특히 일부 기물의 행마를 제한하는 '장강(長江)'이 그렇다. 병(兵)과 졸(卒)은 오직 앞으로 전진하며 강을 건너서야 좌우 이동이 가능하다. 또 궁성 안의 대각선을 타고 비스듬히 전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은 중국 장기는 ‘빅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승부만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중국 장기는 왕과 왕이 서로 대치되어 마주치면 노출시킨 측이 패한다. 또 중국 장기는 동일 수를 3회 이상 반복할 수 없으므로 ‘만수빅장’이라는 것이 없다. 다만 간혹 서로 기물(장기알)이 많이 소진되어 승부를 가를 수 없는 경우는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장기는 수세에 몰린 측이 고의로 왕을 상대 왕에게 노출시켜 빅장을 노리고 또 기물로 만수빅장을 요청하여 승부가 없이 끝내려고 드는 경우가 많다. 한국 장기의 빅장논리에 대해 대한장기협회 김응술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 장기와 일본 장기는 오로지 승부만 있을 뿐 고의적인 빅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역사는 국토가 작은 범위 내에서 생존을 위해선 화해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생사결단의 투지보다는 불리하면 화해를 요청하여 나라의 생존을 도모했기 때문에 장기놀이도 승부가 없이 빅장을 추구하는 식의 놀이가 생겨나게 되었다.”

중국 장기는 초나라 왕 항우와 한나라 왕 유방이 나라를 빼앗는 싸움에서 유래되어 반드시 승부를 가르는 놀이로 정착됐다. 이에 비해 한국 장기는 영토 확대 싸움보다는 지켜내려는 것이 우선이어서 빅장논리가 발달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의 역사적인 정서는 아기자기한 정의 문화여서 승부보다 화해에 무게를 두다 보니 장기놀이도 빅장논리가 발달했다.

중국인의 영토 확장추구와 한국인의 영토를 지켜내려는 노력이 장기놀이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중국 장기는 초의 졸과 한의 병이 강을 건너기 전 자기 진지에선 오로지 앞으로만 전진할 수 있을 뿐 가로로 움직일 수 없으며 강을 건너 적진에서만 가로로 이동할 수 있다. 이는 졸병의 임무수행이 무엇인지를 명확히?반영한 것이다. 한국 장기는 졸병이 자기 진지에서부터 가로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는 공격이 우선이 아니고 방어에 무게를 둔 역사적인 정서에서 유래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베이징에서 샹치를 두는 모습. 중국에서는 장기를 샹치(象棋)라 부른다. 최근 중국 정부의 장려와 후원으로 샹치는 국민적 스포츠로 정착하고 있다.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2010년 아시안 게임에 샹치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다음 중국 장기와 한국 장기에 있어서 차와 마(馬)만 주보(走步)가 같을 뿐 나머지는 다 다르다.

중국 장기는 포와 포가 서로 잡을 수 있지만 한국 장기는 포와 포가 서로 대결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것도 공격형을 추구하는 중국 장기와 공격보다 방어가 우선인 한국 장기의 차이점이라 하겠다.

세상에 절대적인 논리가 없듯이 중국 장기와 한국 장기를 단순히 공격과 방어의 논리로만 접근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象)은 코끼리가 아니라 전쟁에 필요한 병기와 군수물자를 뜻하는데 중국 장기는 상이 밭전(田)자로 움직이며 강을 건널 수 없지만 한국 장기는 밭전을 뛰어넘어 강을 건너 적진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는 한국 장기가 중국 장기보다 더 공격적이며 더 유연하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다음 한국 장기가 중국 장기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역동적이라는 표현을 논해 보자. 중국 장기는 왕이 사선으로 움직일 수 없으며 차도 왕궁에서 사선으로 못 가는데 비해 한국 장기는 왕과 차 및 상대의 졸병이 사선(斜線)으로 마음대로 움직인다. 또 중국 장기는 사(士)가 직선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오로지 사선으로 이동한다. 한국 장기는 사가 왕의 진영에서 직선·사선으로 마음대로 움직인다.

중국 장기가 유연성과 역동성이 떨어져 조금 딱딱한 기분이 드는데 반해 한국 장기는 유연성이 풍부해 재미가 더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 장기와 한국 장기의 이러한 차이에 대해 이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국 장기는 한반도 지리적인 환경에 의한 풍류도 정신과 화기애애한 정의 문화에 따라 유연하고 역동성이 풍부하게 만들어진 것이고 국토를 지켜내려는 역사적인 원인으로 인해 화해의식에서 빅장의 논리가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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