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이·아·세]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바람만이 아는 대답’처럼

한강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강 2024년 노벨문학상 선정’이라는 TV 자막을 보고 긴가민가했다.


서가를 보니 한강의 소설과 그의 아버지 한승원 선생의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여수의 사랑>과 <내 여자의 열매>는 초판 1쇄이고,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는 초판 4쇄라고 찍혀 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이청준 선생의 <당신들의 천국>이나 최인훈 선생의 <광장>이 노벨상 후보로 올라 상을 받기를 염원했지만 다른 사람들만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다가 두 분이 작고한 다음,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진실로 축하하고 또 축하할 일이다. 신기한 것일까? 당연한 것일까?

미국의 가수 밥 딜런이 201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그해 2016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았는데, 올해 드디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 당시 일본의 작가 무라야마 하루키가 순번이 몇 번이고, 아무개가 1번이며 또 다른 아무개는 순번이 몇 번이라고 여기저기 설왕설래하는 것을 무심코 듣고 있다가 밥 딜런이 받았다는 소식에 마치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절친한 지인이 받은 것이나 진배없이 가슴이 설레어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내가 항상 ‘시詩’보다 더 시 같은 가사라고 말했던 그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 이것이 시가 아니고 어떤 것이 시겠는가?

나는 오래 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던 적이 있다.

바람이 바람을 불고 지나가는 텅 빈 벌판이나
저물어 가는 강변에 서 있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바람이 바람에게 말하는 소리를
나직하게 말하다가 지친 바람은 그 자신의 소리를 외면하고
인간의 소리도 외면하고,
세상의 모든 소리도 외면하고
스스로 가야 할 길만 우직하게 간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바람이 두고 간 말들의 여운을 좇고 있는 한 사내,
그 한 사내가 바람이 되어 바람처럼 먼 길 떠나는 시간,
지금 이 시간.

밥 딜런 평전, 마이크 마퀴스 지음

그 때 내 마음을 파도처럼 뛰어 놀게 했던 노래 가사가 바로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봐야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될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날아야
백사장에 편히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지나가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친구여, 그 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
높은 산이 씻겨 바다로 흘러 들어갈까.
사람이 자유를 얻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 걸까.
사람은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지.

사람이 하늘을 얼마나 올려다봐야
진정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려야
다른 사람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너무도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는 걸 알게 될까.
친구여, 그 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지.

밥 딜런의 시詩보다 더 시 같은 노래다.

아무도, 그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해답을 단 하나, 바람만이, 바람만이 대답해준다고, 세상의 모든 불행, 모든 사랑, 모든 평화가 지나가는 그 바람결에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고,

사람을 ‘현명’하게도 하고 사람을 슬프게도 하고 또는 ‘절망’에 빠뜨리기도 하고 그리고 ‘구원’해 줄 것이라고 속삭이며,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 바람이 알고 보니 그대의 사랑이자 분노였던 것을,

내가 밥 딜런의 노래에서 반했던 소절은 첫 소절이다.

“사람이 얼마나 먼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될까.“

그렇게 오랜 세월 걸었는데도 항상 길 위에 있으면서도 내 마음은 항상 그 자리를 맴돌고 있고, 부처는 더도 덜도 아닌 ‘길의 끝에 자유가 있다’고 속삭인다. 예수도 말했지 않은가? “나는 길이요, 생명이니라.“

내 생명이자 자유이며, 내 죽음인 ‘길‘ 그 길을 얼마나 더 걸어야 진정한 자유,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될까? 얼마나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난 뒤에야 나만이 느끼는 자유, 나만이 느끼는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인가? 그때는 진실로 참다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네 젖기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 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실린 글이다.

밥 딜런의 노랫말 가사와 닮은 듯 다른 글로 이 세상의 사랑과 자유, 그리고 평화를 노래해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2024년 노벨문학상을 축하하고 이어서 수많은 한국의 작가들이 노벨상을 받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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