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 칼럼] “권력이란?…씨앗과 같아 둘로 나눌 수가 없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사대부가 살고 있는 곳은 인심이 고약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사대부들은 대부분 특정 당파에 가입하여 있었고, 서로 싸우다보니 인심이 악화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여러 문집들을 보면 당쟁으로 인한 부정적인 표현들이 수도 없이 많다. 오죽했으면 <성호사설> 저자 이익이 붕당간의 반목을 두고 “서로 원수가 되어 죽이고 죽으며 한 조정에서 벼슬하고 살면서도 평생토록 왕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겠는가? 그래서 조선의 선비로 붕당에 가담하지 않으려면 “벼슬을 버리고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각고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신축년 임인년 이래로 조정의 윗자리에 소론 노론 남인간의 원한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서로 역적이란 이름으로 모략한 그 영향이 아래로는 시골에까지 미치어 큰 싸움터를 이루고 있는 지경이다. 서로 혼인하지 않는 것은 물론 서로가 서로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상황이다. 다른 파벌이 또 다른 파와 친해지면 지조가 없다 하거나, 항복하였다고 헐뜯으며 서로 배척한다. 건달이 되었건 종이 되었건 한번 아무개 집 사람이라고 말하면 비록 다른 집을 섬기고자 하여도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사대부로서의 어짊과 어리석음, 높고 낮음은 오직 자기 파벌에서만 통할 뿐, 다른 파벌에게는 전혀 통하지 못한다. 이 편 인물을 다른 편에서 배척하게 되면 이 편에서는 더욱 귀히 여기고, 저 편에서도 또한 그러하였다. 비록 죄가 천하에 가득 차 있더라도 한번 다른 편에 의하여 공격을 당하면 잘잘못을 논할 것도 없이 모두가 일어나 그를 도우며, 도리어 허물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비록 성실하고 바른 행실과 높은 덕이 있다 하더라도 같은 편이 아니면 우선 그의 옳지 못한 곳부터 살핀다.”
이와 같은 당파 간 싸움은 학문적 측면에서도 나타났는데, 기호학파가 영남학파를 두고 “스승은 제자를 칭찬하고 제자가 스승을 칭송하여 하나의 당을 만들었다”고 몰아붙이면, 영남학파는 기호학파를 겨누어 “인조반정 후 산림의 도학자들을 존중하자는 허울 좋은 미명을 내걸고 권세에 급급하였다”고 몰아세웠다.
뿐만 아니라 그 명맥은 근현대에 접어들면서도 없어지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일제 강점기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도 조완구, 조소앙 등의 노론계와 이시영, 신익희 등의 소론계 그리고 이동녕, 홍진 등의 남인계와 엄항섭 등의 북인계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제각각 모였고 서로간의 사리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같은 당색의 동류의식을 먼저 노출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독립운동세력은 임시정부파와 광복군 그리고 이회영과 신채호 계열의 아나키즘운동 등 여러 갈래가 있었으며, 그 단체들은 해방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 북한은 북한대로 권력 싸움이 계속되었고, 남한은 남한대로 조선시대의 당색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계속 했다. 신채호, 박은식 등이 당파적 성격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고, 결국 해방이 되어서조차 김구, 여운형, 장덕수 등 몇 사람이 당파간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당색이 처음 일어났을 때에는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나, 자손들이 조상들의 주장을 지킴으로 인해서 200년 만에 굳어서 결코 깨뜨릴 수 없는 당이 되었다. 노론 소론은 서인으로부터 분열한 지 겨우 40여년밖에 되지 않은 까닭에 형제 숙질간에도 노론 소론으로 갈려진 자가 있었다. 편이 한번 갈라지면 마음들이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멀어져 같은 편과는 서로 의논하여도 다른 편이라면 가까운 친족 사이에도 서로 말하지 않았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하늘이 내린 윤리도 다 없어졌다고 하겠다.”
이중환이 토로한 것처럼 한번 다른 편으로 갈라지면 서로 만날지라도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뒤주 속에서 죽은 비운의 사도세자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를 예로 들어보면, 당파의 차이는 부부 사이에서도 수그러들지 않는 정도였다. 홍씨는 남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풍산 홍씨 가문과 아버지 홍봉한을 위하여 애를 썼던 흔적을 <한중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캐럴 태브리스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인간은 세상을 둘로 나누길 좋아한다. 우리, 그들, 좋은 놈, 나쁜 놈, 남자, 여자, 서양식 사고방식은 이분법을 강조한다. 인간 삶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들을 쓸데없이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구분한다.”(신정일의 <신 택리지, 명당과 갈지> 중에서)
조선 중기, 정여립 사건(기축옥사) 이후부터 극명하게 갈라진 마음들이 ‘씨앗과 같아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권력’ 때문에 몇백 년이 넘도록 지금도 이어져 세상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전쟁과 피하기 어려운 죽음에 직면해서 아타락시아(ataraxia), 조용한 마음으로 만사를 방관하는 이외의 나은 지혜는 없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이 맞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