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문학상…”대한민국이 세계정신의 종주로 등극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엔=조정래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쾌거는 한국문학의 갈 길을 제시한 쾌거라 할 만하다. K팝이 한국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한류를 주도하고 있다면, 한강은 한국 문단에서 세대교체를 이룩한 문학 한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는 주로 광주 5.18, 제주 4.3 등 역사적 상처에 주목하고 그것을 테마로 한 소설을 쓰고 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에서 보여 준 역사의식은 과거이면서 현재진행형으로 한국인에 공통되지만 잊거나 감추어진 상흔을 개인의 트라우마로 연결, 시상하부에 엎드려 있는 불에 데인 자국을 섬세하게 길어 올린다. 하여 그의 소설작법이 마치 의식의 흐름을 자동기술의 기법에 의해 ‘쓰기’보다는 ‘쓰여지고 있는’ 듯한 몽환에 빠지게 한다.
그의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마도 번역가일 게 틀림없다. 여태껏 고은을 비롯해 박경리, 황석영, 김주영 등 기성의 대가들이 노벨상 수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오히려 그들보다 상위에 위치해도 하등 손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론만 되고 번번이 고배를 마셔 온 것은 아마도-아니 더 나아가 틀림없이- 한국의 한의 정서를 타 언어로 빚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강의 소설들은 한국의 한을 그것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시민으로서 글로벌한 정서로 변주를 적절하게 했기에 국제 무대에서 통했다고 볼 수 있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서양인들조차 이해하기 쉬운 어패러터스(소도구)를 적절하게-그러나 너무 많이 사용해 국내 관객에게는 다소 작위적이고 식상하게 비쳐진-배치하거나 은밀하게 비쳐줌으로써 기승전결의 형식적 합리성에 경도된 서양인들에게 구조적 탄탄함을 드러내기에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구세대가 막연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한의 정서에 침잠한다면 신인류들은 구체적이고 자잘한 한을 잘게 부순 부드러운 정서에 여며드는 것처럼 한의 정서 또한 세대 혹은 시대 교체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새로운 분석과 통찰을 통한 연구 집대성이 요구되는 바, 향후 문화인류학자들의 연구에 기대를 걸어 본다.
한강의 문학적 자질은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에 빚을 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승원은 원초적 본능에 대한 탐구와 천착을 소설 속에 녹여 내곤 했는데, 글의 무게감 측면에서 필자는 딸 한강보다는 아버지의 소설과 정서에 더 호감이 간다. 세대가 다른 탓일지도 모른다.
영화에 이은 문학에서 세계를 제패한 것은 실력에 비해 너무나 뒤늦었지만, 한국문학과 한류가 세계정신의 정수라는 것을 만방에 알리는 쾌거라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정신이 세계 정신사를 주름잡고 주도해 나가는 획기적인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이 세계의 정신의 종주로 등극하기 시작했다고 하겠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감읍하여 짧은 밑천으로 주절주절 인상평으로 길게 쓰는 부끄러움을 내가 상을 받은 것과 같은 기쁨으로 감수하면서 몇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