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상대의 곁에 머문 시간 만큼, 상대의 입장을 헤아린 만큼
욥기 5장
욥기 5장에 나오는 엘리바스의 말은 대부분 성경에서 한번쯤 읽어봤을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욥 5:18)
이 구절은 이사야 30장 26절과 비슷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사 30:26)
호세아서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되는 성경구절 20선’ 이런 리스트에 단골로 나올 법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정작 욥은 엘리바스가 건네는 위로의 말들이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위로보다는 도리어 책망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욥 6:25)
엘리바스 입장에서는 고심해서 건넨 말이었습니다. 옳은 말이었고 좋은 말이었습니다.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욥 5:27) 대충 생각해서 떠오르는 말을 건넨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던 것입니다. 욥에게 무슨 말을 하면 도움이 될까? 하며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기울여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많이 준비했다고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준비했다 하더라도 준비한 것을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말도 애써 삼켜야 할 때가 있고, 준비되지 않은 말이라도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보다 내가 중요하면 내가 준비한 것을 기어코 하고야 말겠지만 상대방을 나보다 소중하게 여긴다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다 하더라도 준비한 것을 버릴 줄 압니다. 그에게 진정한 힘과 위로가 되는 것은 내가 공들여 준비한 것조차도 아까워하지 않고 버릴 줄 아는 태도가 아닐까요?
좋은 말보다 더 위로가 되는 것은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말은 책상 앞에 앉아서 연구하는 만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좋은 사람은 상대의 곁에 머문 시간 만큼, 상대의 입장을 헤아린 만큼 만들어집니다.
십자가가 왜 위로입니까? 하나님이 철저하게 인간의 입장이 되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