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구경만 하던 타인의 고통을 몸으로 경험하다

욥기 21장

욥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결백한지 주장했고, 얼마나 억울한지 호소했습니다. 하나님께 원망어린 질문을 쏟아놓았습니다. 아픈 상처에 소금 뿌리듯 말하는 친구들을 향해 언성을 높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루 아침에 세상을 떠나버린 가혹함과 온 몸에 도진 욕창의 통증 속에서 절규했습니다. 욥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욥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줄곧 자신의 아픔, 자신의 고통,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던 욥이 타인의 아픔, 타인의 고통, 타인의 억울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기력이 정정하다. 죽을 때에도 행복하게, 편안하게 죽는다. 평소에 그의 몸은 어느 한 곳도 영양이 부족하지 않으며, 뼈마디마다 생기가 넘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행복 하고는 거리가 멀다. 고통스럽게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는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은 다 함께 티끌 속에 눕고 말며, 하나같이 구더기로 덮이는 신세가 된다.“(욥 21:23-26, 새번역)

이런 세상사를 욥이 모르고 지냈던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었을 때도 다 알고 지냈던 사실이였습니다. 악인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기도 했고, 선한 사람들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고통스럽게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그런 처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 보고자 많은 애를 쓰기도 했을 것입니다. 못먹는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못입는 이들을 입히며, 병에 걸린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업을 추진했던 칭찬받는 지역 유지였습니다. 사람들의 칭찬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인정받았던 의인이였습니다.

그들을 돕는 입장이었던 욥이 이제는 그들과 같은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신발을 신고 걷게 된 것입니다. 욥은 그동안 남에게 관심이 없지 않았습니다. 자기밖에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눈으로 구경했던 나 바깥의 세상, 귀로 들었던 타인의 고통을 이제는 몸으로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체휼하게 된 것입니다.

아프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깊이가 있습니다. 가난을 통해서만 얻게 되는 자산이 있습니다. 죽을 지경에서만 쉬게 되는 숨이 있습니다. 바닥을 길 때만 읽을 수 있는 땅의 디테일이 있습니다. 한계에 봉착했을 때만 비로소 보이는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욥은 지금 거기까지 온 것입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작 ‘아내에게 조롱받는 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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