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구약’의 욥과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욥기 14장
“나무는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찍혀도 다시 피어나 움이 거듭거듭 돋아납니다. 뿌리가 땅 속에서 늙고 줄기가 흙 속에서 죽었다가도 물기만 맡으면 움이 다시 돋아 어린 나무처럼 가지를 뻗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제 아무리 대장부라도 죽으면 별 수 없고 숨만 지면 그만입니다“(욥 14:7-10, 공동번역)
욥은 극심한 고통 속에 괴로워하다가 문득 한 그루의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나무인데 날이 풀리고 비가 내리니까 새 움이 돋더라는 것입니다. 땅 위에 드러나 있는 부분은 누가 봐도 죽은 것과 다름 없었는데 땅 밑의 뿌리가 살아 있으니까 결국 다시 살아나더라는 것입니다. 욥은 그런 나무를 보며 뿌리가 없는 자기 인생에 절망을 느낍니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사람들? 그들은 뿌리가 없어서 사는 게 아주 힘들거야. 바람에 휩쓸려 다니거든.” 인간은 두 발로 자유롭게 걸어다닌다 생각하겠지만, 나무가 보기에는 한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돌아다녀야 하는 인간이 불쌍했습니다.
인간에게 뿌리가 없다는 것은 인간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의 문제일까요? 땅이 문제라서 우리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에는 뿌리내릴 수 없는 세 종류의 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뿌리가 제거된 인생도 있을 것이고, 없는 줄 알았는데 시냇가의 옥토를 만나서 뿌리의 존재를 새롭게 알게 되는 인생도 있을 것입니다.
욥은 뿌리 없는 자신의 인생을 보며 절망하고 있지만 욥이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썩어 문드러지는 자기 인생에서 뿌리가 자라나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뿌리는 땅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랍니다. 현상적이고 피상적 세계에서는 그 존재의 형태와 방식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뿌리입니다. 말 그대로 근원입니다. 이 근원적 영역을 우리는 영적 세계라고 부릅니다. 고난은 보이지 않는 근원적 영역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며 우리를 신앙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예쁜 화분의 꽃과 같던 우리의 인생을 땅에 옮겨 심으실 때가 있습니다. 시냇가에 뿌리를 내리고 계절을 따라 열매 맺는 나무로 자라는 것,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