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들
에스더 4장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 사건들이 소개되지만, 벌어지는 사건들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다니엘서에는 우상을 섬기던 이방 국가의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오지만 에스더서에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2,500년 전, 페르시아 왕국의 왕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기록한 그저 사극 드라마 한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점이 우리 일상의 한 단면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굳이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고도 설명이 가능한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삽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돈도 벌고,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려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것도 ‘나’이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일이 진행되게 하는 것도 ‘나’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과연 일하고 계신지 아리송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보다는 확률과 과학, 심리와 자본의 원리로 설명하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이는 세상을 삽니다.
에스더서는 그런 우리의 현실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으로 초청합니다.
우리 인간은 다 나름의 계획들이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여러 사람의 계획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하수에로 왕도 계획이 있었고, 그의 신하들도 계획이 있었고, 모르드개도 계획이 있었고, 에스더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만도 자기 계획이 확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인간 나름의 계획들이 충돌하고 얽히고 무산되고 수정되며 교차하는 동안 묘하게 이루어져가는 하나님의 섭리야말로 에스더서가 전하는 은혜이고 신비입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4)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져 가고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 없이도 굴러가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라고도 말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