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세상의 노예가 되기로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에스라 8장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스 8:15)

바벨론에서의 생활은 그럭저럭 먹고 살 만했습니다. 나름대로의 자유가 보장되었기에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 나쁘지만은 않은 생활의 질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피식민 계층을 가혹하게 억압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으로서는 피지배계층이 민란이나 폭동을 일으키는 것보다 그들이 자국 내에 번성하면서 충분한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편이 더 큰 이득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곳마다 회당 운영이 허락되었고,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문화적, 신앙적 유산을 계승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서는 2차 포로 귀환에 관한 기록입니다. 1차 포로 귀환과 2차 포로 귀환 사이에는 80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습니다. 2차로 귀환한 포로들은 1차 귀환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대입니다. 바벨론에서 태어나서 바벨론에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세대에게 이스라엘 땅은 ‘돌아가야 할 곳’이었지만 2세대에게 이스라엘 땅은 난생 처음 가보는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2차 귀환자 명단에 레위인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1차 귀환 때도 제사장보다 레위인이 훨씬 소수였습니다. 바벨론에는 회당이 많아서 레위인들의 고용이 보장되었다면 이스라엘 땅에서는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려야 했기에 레위인들로서는 발걸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포로 귀환자들은 다들 자발적으로 예루살렘 행을 결정했습니다. 바벨론을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남을 사람들은 남았습니다. 누구도 강요하거나 등 떠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각자의 자발성이 존중되었다 하더라고 2,000명 가까이 되는 귀환자 명단에 레위인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물론 어느 누구도 레위인더러 생계를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굶주림을 무릅쓰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레위인 입장에서도 바벨론에 세워진 소중한 예배의 터전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0명이라는 숫자는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바벨론의 식민지 정책이 주효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편안한 삶을 보장하는 것 같았지만 유대인들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심지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은 신앙의 유산을 나름대로 잘 지키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노예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바벨론의 노예가 되기로 결정하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일부는 바벨론의 진짜 노예가 되고서도 자유롭다고 착각했습니다.

혹시 나도 세상의 노예가 되기로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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