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나를 쪼개지 않고, 상대를 쪼개기만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에스라 4장
예나 지금이나 방해하고 괴롭히는데는 소송만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페르시아 왕에게 고소장을 제출합니다. 에스라 4장에는 그 고소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유프라테스 강 서쪽에 있는 신하들이 아닥사스다 임금님께 아룁니다. 임금님께서 다스리시는 여러 지방에 흩어져서 살던 유다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자리를 잡고, 범죄와 반역을 일삼던 악한 성읍 예루살렘을 지금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기초를 다시 다지고, 성벽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이 일을 임금님께 아룁니다. 성벽 쌓는 일이 끝나고 그 성읍이 재건되면, 그들은 세금과 조공과 관세를 바치지 아니할 것이며, 틀림없이, 국고에 손해를 끼칠 것입니다. 나라에서 녹을 타먹는 우리로서, 임금님께 불명예스러운 일이 미칠 일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이렇게 상소문을 올리어서 임금님께 아룁니다.”(스 4:11-14)
상소문만 보면 그들은 나라와 왕을 사랑합니다. 왕이 입을 손해를 걱정하며 국익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왕에게 불명예를 안겨줄 일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충성스러운 마음을 구구절절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소문이 진정 왕과 나라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들은 왕이 입을 손해를 걱정하며 국익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이것은 그저 명분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진짜 관심은 자신들의 사익과 기득권에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진리라서 믿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나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일까요? 진리를 믿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진리를 소개하고 싶어서 전도하려는 것인지, 상대가 나와 비슷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 나에게 여러모로 득이 되기 때문에 전도하려는 것인지는 곰곰히 따져봐야 합니다.
말은 늘 자기 유리한대로 뱉는 법입니다. 사람들은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놓고 치열하게 공방하는 것 같지만 분쟁의 이면을 보면 결국 ‘나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그것이 문제의 본질일 때가 많습니다. 진실이라도 나에게 불리하면 왜곡하고, 거짓이라도 나에게 유리하면 합리화하곤 합니다. 그래서 다툼이나 갈등 상황에서는 양측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좌우에 날선 검과도 같습니다. 칼날이 양쪽을 똑같이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쪼개지 않고 상대를 쪼개기만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