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영화산책] 에미상 8관왕 ‘성난 사람들(BEEF)’


한국계 제작진과 배우들이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 에미상 8관왕에 올랐다. (2022년 제74회 에미상 ‘오징어게임’에 이어 한국적 요소를 담은 작품이 또 일을 냈다.)

‘성난 사람들’은 1월 15일 미국 LA 피콕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에미상 시상식에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작품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등 8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2024 에미상감독상 이성진 감독

이성진 감독(43)은 감독상과 작가상을 받고, 스티븐 연(41)이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중국·베트남계 배우 앨리 웡(42)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캐스팅상, 의상상, 편집상까지 총 8개 부문을 휩쓸었다.

남우주연상 스티브 연과 여우주연상 앨리 웡

Beef는 ‘소고기’ 말고 뭔가 끊임없이 불평불만 지껄이는 “퍽퍽” 하는 군소리를 말한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늘 기분 잡친 표정의 한국계 미국인 남자가 있다. 돈도 안 벌리고 재수 없는 일만 생기면 “아, 뭔가 있어, 뭔가가 날 계속 괴롭혀” 이러면서 살아간다. 한인 이민자 2세 대니(스티븐 연)는 미국 사회의 하류인생이다. 겨우겨우 살아가면서 불만 투성이에 엉망진창(Mess) 그 자체다. 현실 직시의 사기본능은 깊어간다. LA 한인교회 성가의 세례 속에 눈물 쏟아내는 감읍 연기는 진국이다. 그 한인교회를 농락한다.

그야말로 생존과 돈 욕심에 열심 그 자체인 중국계 40대 여성.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자신의 본모습을 잃은 채 살아가는 에이미(앨리 웡). 가정생활도 남편과의 관계도 진실인듯 가식이다. 늘 표정은 웃는 듯 하지만 긴장에 경직에 거짓 미소만 가득하다. 언어변별력은 뛰어나 임기응변은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늘 피곤하다.

그 둘이 꼬인다. 쇼핑센터 주차장 난폭운전으로 엮이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블랙코미디. 분노와 역겨움이 한 통속이 돼 서로 치고 박고 싸운다.

한국계 이민자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하긴 삶 자체가 이민 아닌가, 늘 이민이다.) 아시안계 이민자들의 역사와 생존 맥락이 뚜렷다. 미국 사회 소수계지만 뛰어난 삶의 책략은 여전하다. 동시에 그들의 행태 하나, 본능 하나, 몸짓 하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에미상은 울컥한 것이다. 이게 미국이다. 이게 미국 현실이다. 이게 미국의 솔직한 본능이다. 미국의 돈질 일상, 사실 별 것 아니었다. 있으면 살고, 없으면 지옥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어이할 것인가. 자디잔 정이 없다고? 그게 삶이다. 당면한 현실이다.

징징대지 마라. 질질 짜도 소용없다. 이 드라마, 참 살벌한 블랙코미디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 한 장면. <연합뉴스>

아날로그시대가 축소되고, 온라인 모바일디지털시대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모든 콘텐츠 출연자의 손엔 핸펀이 들려있다. 모든 비극의 사달은 핸펀에서 시작되고, 핸펀으로 전염되고 퍼져 나간다. 인간의 욕망은 더더욱 증폭되고 폭력적으로 날카로워진다. 동시에 질투와 분노가 다이나마이트처럼 장착된다.

다양성은 포용성으로 수렴되지 않고 양극화로 곧잘 치닫는다. 무시당하면 흉기에 찔린 것처럼 흉중의 총을 꺼내든다. 사회는 항상 유혈이 흥건하다. 화난 사회 위험의 아스팔트에는 블랙홀이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침묵하거나 친절하지 않으면 언제든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성난 사람들>은 그 단적인 우화다.

각본까지 맡은 이성진 감독은 제2의 봉준호라 할 만하다. 넘 센티멘탈하고 넘 글루미하면서 넘 정교하다.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까지 쥐락펴락한다. 한국적 멜랑꼬리함을 미국 무대에서도 당당하게 펴고 구부리고 비틀어 버린다. 그 작가적 설계와 연출기법에 미국 주류도 고개 꾸벅 하고, 큰 박수 보낸 것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