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영 작가의 ‘성난 사람들’ 눈물로 본 뒷얘기
남편과 싸우고 냉전했다가 화해한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이런 글을 올릴 때마다 다음과 같은 댓글을 주시는 분들이 항상 계신다. “아직 신혼이시네요!” “젊으세요!” “애정이 있으니 싸움도 하시는 거죠.”
그렇지 않다. 우리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신혼이라서도 아니고 아직 젊어서도 아니다. 상대에게 애정과 기대가 있는데 그게 충족되지 않아 서운해서가 아니다.
남편과 나의 갈등은 연애 초기의 밀당 같은 게 아니다. 아닐 수밖에 없다. 20년 산 부부에게 그런 힘겨루기는 있을 수 없다. 더러운 성격 두 사람이 재혼했고, 두 번 이혼할 수는 없어서 싸우며 사는 거다.
남편과 나의 싸움과 성격이 아주 비슷한 갈등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있다. 이번에 에미상 8관왕을 수상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다.
베트남계 미국인 여자와 한국계 미국인 남자가 우연히 쇼핑몰 주차장에서 난폭운전으로 싸우다 감정이 격해지고 각자 미국 속 소수민족 이민자로 중년까지 살아오면서 마음 속에서 쌓이고 곪아 터진 온갖 설움과 분노를 상대를 향해 터뜨리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드라마 <성난 사람들> 1회를 보다 중간에 포기했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촉발된 분노가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스토리 속 주인공들에게서 마치 나와 내 남편을 보는 것 같아서 너무 괴로워서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내 결혼식 때 우리 아들 구두 신으라고, 자기 아들 어릴 적 구두를 들고 와준 고등학교 동창 40년 친구랑 단톡방에서 말싸움 붙어서 절교한 사람이다. 내 인생의 숱한 고비마다 곁에 있어주고 도와줬던 또 다른 중학교 동창 40년 친구랑도 사소한 일로 다투다가 절교했다.
그런 사람인 나보다도, 욱하는 분노 폭발로 말할 것 같으면 ‘한 수 위’이기 때문에 내가 참으며 모시고 사는 분이 우리 남편이다.
그래서 도저히 못 보겠어서 안 보려다가 평이 워낙 좋길래 <성난 사람들> 2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고 그 후로 마지막 회까지 여러번 눈물을 글썽이며 끝나는 걸 아쉬워하며 시청했다.
나는 24살부터 36살까지 12년 동안 브라질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로 살았다. 댓글로 링크한 기사에는 <성난 사람들>의 이성진 감독이 처음에는 ‘소니 리’로 살다가 ‘이성진’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성진 감독과는 반대로 나는 처음에는 내 이름을 발음 못하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몇년간 꿋꿋하게 ‘진영’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었다. 그러다 ‘진’으로 바꿨다가, 10년쯤 지났을 무렵, ‘아이고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그냥 브라질 이름 만들자’ 싶어서 ‘줄리아’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렇게 새로 만든 ‘줄리아’라는 이름을 쓴 지 1년도 채 안 되어 서울로 돌아온 게 2002년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를 기억하는 브라질 친구들은 나를 진영이라거나 진이라고 부른다. 그들 중 아무도 내가 줄리아인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