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미감美感] 밤의 ‘벌교 꼬막’과 ‘겨울 물새’
그 사람 씽긋 웃는다
나도 씽긋 웃는다
사는 게 이렇구나
벌교 꼬막 까먹는다
* 순천에서 진트재를 넘으면 벌교(보성군)다. 진트 고개는 <태백산맥> 씬스틸러 무녀 소화(무당 월녀의 딸)가 살았던 공간배경. 벌교는 거대한 갯벌(여자만)을 끼고 있는데 대한민국 최대 참고막 새고막의 무진장 서식처다. 순천, 보성, 고흥 사람들은 겨울의 나날 긴긴밤, 꼬막을 까먹고 사랑을 까먹었다.
* 겨울 물새들(기러기, 고니, 원앙, 백로, 왜가리, 두루미)이 한겨울을 가로질러 날아오더니 얼음 조각이 동동 뜬 순천만에 발을 담근다. 양말도, 방한화도 신지 않았는데 발은 시럽지 않을까. 동상에 걸리지 않을까. 물오리는 아무리 찬바람이 몰아쳐도 차가운 물 위에서 유유히 동동 떠다닌다. 심지어 온몸을 담근 채 자맥질까지 한다. 곰처럼 겨울잠도 안 잔다. 도대체 겨울 물새는 어떻게 엄동설한을 견디고 살아갈까.
* 새들은 평균체온이 40도 이상으로 높다. 먹이만 잘 먹으면 높은 체온을 이용해 큰 추위를 견딜 수 있다. 새의 발목에는 일종의 열교환 장치가 있다. 발끝의 차가운 피는 열교환 장치를 거쳐 체내의 더운 피와 교체된다. 얼음 한복판에 서 있어도 얼음판도 녹지 않고 발바닥도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 새들은 두 다리를 모두 웅크릴 수 없으므로 한쪽 다리로 서서 잔다. 한쪽 다리를 털 속에 묻어두기 때문에 두 다리로 서는 것에 비해 체온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뛰어난 평형감각이 있어서 한 쪽 다리로도 거뜬히 서서 잔다. 아주 추울 때는 새들도 모여서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며 기댄다.
* 우리는 꼬막을 까먹으며 기대고, 겨울 물새는 서서 자면서 기댄다. 사람이 잘 해내는 게 있고 물새가 잘 하는 게 있다. 잘 하는 것 잘 하면서 남은 겨울 살아내고 봄을 맞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