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영화산책] ‘추락의 해부’…”진실은 과연 존재하는가”

추락의 해부/Anatomie d’une chute

프랑스 북부 외진 시골집. 3층 다락방 창문 밖으로 남편이 떨어져 숨졌다. 시신은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혈흔은 낭자하다. 첫 발견자는 산책길에서 귀가하던 10대 아들. 소리쳐 엄마를 부르고 모자는 구급차를 소환한다.

남편 죽음 당시 집엔 3층의 남편과 2층의 아내만 있었다. 남편이 틀어놓은 컴퓨터 음악소리는 요란했다. 남편의 추락사는 자살, 타살 2가지 가능성만 존재한다. 경찰과 검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현장 정황을 추적한다. 부검의는 타살가능성 존재하는 의문사로 결론낸다. 미궁을 헤매는 답답함은 법정 공간으로 옮겨진다.

법정 스릴러로 탄탄한 대사가 봇물처럼 터져 2시간30분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유무죄를 판결해 보려는 판사, 타살로 맞춰 범인을 공식적으로 색출하려는 검찰, 검사의 주장을 꺾어 아내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변호사 측이 팽팽하다.

이 모든 상황을 한 편의 드라마로 모니터링하는 배심원단의 시선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장삼이사 시민 배심원들은 피의자로서 아내를 유죄로 단죄할까, 무죄로 방면할까.

40대 초반 부부는 각자 소설 쓰는 작가다. 남편은 아들의 시각장애에 큰 죄책감을 갖고 있다. 유치원에 간 4살 아들의 귀가에 제 시간을 못 챙겨 시력 상실하는 사고를 당했다. 아들의 장애사고 이후 부부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더구나 남편의 소설 일부 플롯을 차용한 아내의 소설은 출간 즉시 성공을 한다. 생계를 위해 대학 강의를 나가는 남편은 이도저도 아닌 지지부진에 삶의 위축감은 자존감을 추락시킨다.

부부 사이는 썰렁하다 못해 겉돌고 소원하다. 남편은 빠듯한 살림에 시골집을 완성하기 위해 손수 기계톱을 잡아야 하고 틈틈이 대학강의도 챙겨야 한다. 외진 주거 환경에 아들의 교육을 홈스쿨링으로 떠맡는다. 글쓰기 재료를 잡기 위해 늘 휴대폰에 모든 대화를 자동 녹음한다. (저장된 녹취는 법정의 주된 판단 증거가 된다) 아내는 똑부러진 성격에 재능이 많다. 글의 진도도 잘 나가지만 번역작업으로도 종종 언론에 노출된다.

영화 후반부는 법정 드라마로서 새로운 차원을 보여준다. 검사나 변호사의 거창한 열변으로 설득력 포커싱하는 기존 포멧이 아니다. 피고인 아내가 주인공이다. 남편의 죽음은 싸늘하다. 부부관계 또한 서늘하다. 부부관계가 작동되는 심리를 해부한다.

아내의 양성애가 외도 행태로 노출된다. (사적으로 만났든, 비즈니스로 만났든, 관계의 주도권을 휘어잡는 여성이 있다. 갑을로 만났지만 을이 갑이 되는 만남의 기운 & 기세) 아내는 기가 셌다. 아내를 변호하는 변호사도 끌려가고 만다. 남편은 기가 딸렸고 늘 열등감에 휩싸였다. 동시에 영화는 ‘재판의 해부’를 보여준다. 은밀한 부부관계가 법정에서 노출되며 그 현장감으로 법정에서 구사되는 논리 또한 관객에게 해부된다. 관객의 시선에 언론은 부채질한다.

카메라는 가해자 피해자의 비극적 순간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가해자 피해자의 결정적 행위를 비춰주지 않는다. 감독의 연출은 9부 능선까지만 밀고 간다. 물론 영화의 외피는 아내의 무죄이지만 ‘열린 결말’로 스토리텔링 모드를 객석에 맡겨버린다.

필자(Harrison K)의 결론이다.  

남편의 자살에 아내의 살인 의도가 개입되었고, 남편 살인 아내 동기에 피해자의 자살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기억과 믿음은 휘청거린다. 기억하니 믿는 것인가. 믿으니 기억되는 건가. 살아갈수록 삶은 ‘라쇼몽’인가. 이유를 모르더라도 우린 판단해서 선택해야만 할 때가 있다. (의무적으로 개입해야만 하는 배심원처럼) 우리는 우리의 결정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믿어야만 하기에 결정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증거 – 정황 – 판단, 이 셋은 늘 파도를 탄다. 개연성이 아주 낮은가. 개연성이 낮다는 이유로 ‘불가능함’으로 판정받는다. 그 ‘불가능’은 과연 불가능한가.

프랑스문학 언변 스타일의 꼬장꼬장함이 살아 있다. 프랑스영화는 상업적 대중성을 누리기가 힘든데 간만에 젊은 여성 감독이 밀고 나가는 뚝심이 발군이다. 비루한 개인 서사와 흔들리는 관계를 다이나믹한 카메라로 제대로 해부한다.

프랑스 쥐스틴 트리에 감독. 2023년 제76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올 아카데미상 후보에 5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등)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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