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영화산책] ‘길위에 김대중’…”어디서든 부르면 달려갔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서울의봄’ 심야 권력탈취 9시간)을 일으켜 군사계엄권을 낚아채고 최규하 과도정부를 허수아비로 만든 전두환 신군부. 박정희 18년 유신독재를 승계하면서 야당을 중심으로한 민주진영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체포구금에 나선다.
국가내란을 음모했단다. 김대중(1924~2009)은 사형수가 된다. 쿠데타 신군부는 국가내란세력으로 조작한 ‘가상의 적’을 내세워 사회안녕을 꾀한다며 정권창출 총부리로 나라를 주물렀다.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은 도둑맞은 <서울의 봄> 이후의 한국 현대사를 압축하고 민주 시민사회가 어떻게 태동되는 지를 요약한다. 그 중심에 인간 김대중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영화 상영위원회’가 기획하고 정치인 다큐멘터리 전문가 민환기 감독이 연출했다.
다큐는 놀랍도록 객관적이다. 인간 김대중을 반대했고 저주했고 조롱했던 자들의 시선에다 눈을 맞추고 쉽고 친절하게 다가간다. DJ를 “친북빨갱이” “5.18 광주사태 배후조종자” “지역감정을 이용해 정권잡은 거짓말쟁이”로 곡해하는 진영에게 이제는 왜곡되고 조작된 그 시각에서 해방되라고 조언해준다.
그가 태어난 1924년부터 1987년 민주항쟁까지 고난과 정치적 박해를 생생한 육성증언과 현장 자료를 통해 다큐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6년이 넘는 옥중생활을 통해 스스로 단련돼가는 김대중 선생의 인동초 옥중서신은 눈물겹다.
항상 공부하는 정치인, 논쟁하고 타협했던 의회주의자, 언어의 힘으로 설득의 힘을 보여주었던 소통의 달인, 한반도에서 아시아로 다시 전 세계로 내달린 역사진보주의자.
1987년 서울역. 17년만에 탑승한 호남선 광주행 남행열차. 광주역 하차, 도청광장을 지나 5.18 광주민주묘역에 발을 딛는 순간까지 DJ와 호남인은 한몸으로 울었다.(1980년 5월 항쟁 당시, 전남도청 200여명 최후 사수대는 “김대중 석방”을 외치다 계엄군에 사살됐고,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 고문실의 김대중은 6월이 돼서야 5월사태 관련 신문 뭉치를 보게 된다. 통곡이 흘렀다.)
□ “바른 정치인이라면 서생적 문제의식(書生的 問題意識)과 상인적 현실감각(商人的 現實感覺) 두 가지를 겸비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원칙에 대해서는 서생과 같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되, 그 방법에 있어서는 상인과 같이 현실에 입각한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 “나는 늘 길 위에 있었다. 어디서든 부르면 달려갔다. 그래서 늘 고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연설과 삶에 박수를 보내고 격려했지만 돌아서면 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