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산책] “DMZ에 유엔본부를” 1주기 맞은 대자유인 김동길의 외침 “꿈은 이루어진다”

1974년 긴급조치 4호 사건으로 15년 징역형을 받고 복역하던 연세대 김동길 교수(오른쪽)가 이듬해 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나자 누나인 이화여대 김옥길 총장(왼쪽)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가운데는 김 교수 변호를 맡았던 한승원 변호사

김동길 박사는 젊은 시절 함석헌 선생 밑에서 공부를 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보면 함석헌 선생은 우리민족 역사를 ‘고난의 여왕’으로 표현한 바 있다.

그가 말했듯이 한민족은 지금도 고난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지 모른다. 생전에 북에서 내려와 이산의 한을 가슴에 품은 김동길은 피를 토하듯 말하곤 했다. “아직도 고난의 시기예요. 제정신을 못 차렸으니까요.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로 통일이 돼야 해요. 그게 한반도의 숙제예요.”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른 허리에 비무장지대가 있다. 북으로 2km, 남으로 2km, 모두 4km 폭으로 10리길이다. 10리가 동서로 350km, 평수로 계산하면 2억7000만평이나 되는 드넓은 공간이다.

김동길은 생전에 남들이 도저히 발상할 수 없는 탁견을 펼쳐, 따르는 이를 경탄케 했다. “그곳에 유엔본부며 부속기관들을 모두 옮겨오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DMZ 둘레길 두타연. DMZ에 유엔본부가 드러서는 꿈, 꿈은 언젠간 현실이 된다.  <사진 박영준>

“비무장지대에 유엔본부를 유치하자는 말씀인가?” 물으면 내놓는 단골 답변이었다. “문명한 나라의 중간 허리에 70년간 자연상태로 내버려둔 땅이 어느 나라에 있습니까? 전 세계에서 환경보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다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보고 싶어 해요.”

광활한 그 비무장지대에 ‘유료 사파리’를 만들어 운영하자고 했다. 그러면 미국 같은 강대국들의 지원금 없이도 유엔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천재적 발상에 대해 “함석헌 선생의 제자로서 선생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나라는 고난을 겪어왔어요. 남을 침략한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그저 늘 당하며 여기까지 왔어요. 유엔본부가 한반도로 오면, 평화를 통해 이 민족이 장차 새로운 여왕이 될 수 있어요.”

김동길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휴전선 이북으로도 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흔세 살이 될 때까지 내 염원은 조국의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우리 선배들이 원했듯 장차 자유민주주의로 남북한이 통일돼야 합니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그전까지 한반도의 유일무이한 합법 정부는 대한민국 하나였어요. 어느 나라 가도 편지를 쓸 때 ‘서울 코리아’면 됐어요. 요새는 ‘서울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 자존심 상해요.”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없다”고 힘줘 말하곤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배재학당 1회 졸업생입니다. 배재학교 동창생 모임에 초대받아 갔더니, 한마디 해달래요. 이렇게 말했지요. ‘배재학당 나온 사람은 아무 일 안 하고 대한민국에서 편하게 살아도 된다. 1회 졸업생(이승만)이 대한민국을 세웠다.'”

자유민주공화국을 세운 건 5000년 역사에 처음 아닌가라는 소신에서였다. 평소 달변가인 김 박사는 신이 나면 강의를 하듯 몇 시간이고 거침없이 열변을 토했다. “옛날에 말이에요. 보릿고개를 넘길 때쯤 농촌에 가면 얼굴이 누렇게 뜬 사람이 많았어요. 풀뿌리, 나무껍질 먹고 견뎠으니까요. 가난을 이겨내고 잘 살아보자고 나온 게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에요.”

김동길은 박정희의 유신 치하에서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다. “유신 때 감옥에 갔어요. ‘민주주의가 뭐 이따위야?’ 덤비다가 말이죠. 유신헌법은 찬성할 자유는 있지만 반대할 자유는 없었어요. ‘반대하는 자는 15년 이하의 징역, 1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했어요. 한창 젊을 때니까, ‘아니 그런 법이 어딨느냐? 민주사회라면 찬성할 자유가 있으면 반대할 자유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학생들한테도, 강연에서도 그런 얘길 했습니다. 그때 대학교수였어요.”

서슬 퍼런 유신독재 때라 김동길은 바로 체포돼 남산을 거쳐 보안사로 끌려갔다. “곧 잡아가더군요. 박정희 대통령 한마디면 남산(중앙정보부)에서 딱 와요. 보안사에 잡혀갔어요. 일주일 조사받았어요. 그래도 동족끼리라 좋은 게 조사하는 사람이 그래요. ‘교수님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라고요.”

그는 1심에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김동길은 판결문 낭독이 끝나자 재판장을 보면서 말했다.

“재판장, 나 항소 포기합니다. 나는 대학교수 하면서 징역 살 만한 나쁜 짓은 안 했다고 생각하는데, 15년을 살라고 하니 어차피 나가도 또 들어올 것 같아요. 아예 15년 살고 나갈게요.”

재판장 얼굴을 보니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얘졌다’고 생전에 회고했다. “교도관까지 찾아와요. ‘교수님 항소해야 합니다. 15년은 긴 세월입니다. 15년 징역에 항소 포기하는 사람 없어요.’ 항소를 안 해서 형이 확정되고 15년형 살러 안양교도소로 갔지요.”

그러나 당시 정치범들은 비전향좌익수를 빼곤, 만기(15년) 복역 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한 1년 사니까 나가라고 하대요. 항소한 사람은 항소서류 처리 때문에 나보다 하루 늦게 나왔어요.”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린 1970년대 후반 지식인 사이에서 널리 읽힌 김동길 교수의 <링컨의 일생>

그는 이화여대 연세대가 있는 서울 대신동 김옥길 기념관 옆의 양옥에서 살았다. 자택 입구에 백목련이 한 그루 있어 봄이면 하얀 꽃들이 만발했던 기억이 난다. 생전에 ‘김동길TV’와 홈페이지 ‘김동길닷컴’을 통해 세계 최고령 시사평론가로도 활약했다. 유튜브는 2021년 2월 6일 개국했으니, 최고령 시사평론 유튜브로 기네스북 감이었다. 10분 안팎 논평을 3일에 한 번꼴로 올려 주위의 경탄을 자아냈다. 180회 가량 방송했고, 구독자 수도 32만명을 훌쩍 넘었다.

별도로 ‘민립교양대학’이란 채널을 통해 세계사 강좌도 연재했다. 홈페이지에 짧은 글, 주로 시사 논평도 거의 매일 올린 노익장이었다.

생전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자주 인용했다. “이런 말이 나와요. ‘제때에 죽어라(Die at the right time).’ 그게 마음대로 안 돼요. 각오는 되어 있지. 늘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어요. ‘나는 말 타고 가다 죽지 누워서 앓다 죽진 않는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사라질 뿐. 나도 이제 사라지겠지. 그때까진 내 일을 할 거예요.”

니체처럼 김동길 역시 영원회귀 사상을 믿었을까? “생명에 영원함이 없다면 인간처럼 허무한 게 없을 거예요.” ‘강한 신앙을 동경하는 것은 강한 신앙의 증거가 아니라 그 반대’라고 니체는 설파했다. 9순 초반에 접어들었는데도 김동길 박사는 여전히 기억이 비상하고 총명했다. 토머스 칼라일의 시 ‘오늘(Today)’을 비롯해 영시 몇편을 줄줄 외곤 했다.

보라 푸르른 새날이 밝아오나니
그대 생각하여라
이 하루를 헛되이 보낼 것인가
영원에서부터
이 새날은 태어나서
영원 속으로 밤이 되면 다시 돌아가리니
아무도 미리 보지 못한
이 새날은
너무나 빠르게
모든 이의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지나니
보라 푸르른 새날이 밝아오누나
그대 생각하여라
이 하루를 헛되이 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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