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 칼럼] 링컨, 우울증 극복하고 최고의 대통령으로

게티스버그에서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연설을 하고 있는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은 미국 최고의 대통령이었을 뿐 아니라 인류 역사상 성인(聖人) 반열에 들 만한 위대한 인물이다. 일제의 한국 식민통치와 제국주의를 비판했던 일본의 양심적 지성, 야나이하라 다다오(1893~1961) 전 도쿄대 총장도 <내가 존경한 사람들>이란 책에서 성경의 이사야, 예레미야, 바울 등과 함께 링컨을 7인의 성인으로 꼽았다.

필자는 링컨의 뛰어난 인생과 성취에는 본인의 훌륭한 자질과 인격 뿐 아니라 평생 그를 괴롭혀온 우울증의 덕분도 컸다고 본다. 링컨이 어린 시절 오두막집에서 살며, 정규학교는 1년을 못 다녔을 정도로 불우한 환경 속에 자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의 인생 전체가 대부분 불운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9세 때 어머니를 잃었고, 사랑이 없는 아버지 밑에서 힘든 소년기를 보냈으며, 19세 때 가장 사랑하는 누나를 잃었고 22세 때 첫 직장에서 쫓겨났으며, 23세 때는 친구와 동업 하다 실패, 빈털터리가 됐다.

26세 때 사랑하던 여인이 전염병에 걸려 사망했으며, 32세 때 한 여성과 결혼하려다 결국 포기하고 결혼식 당일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그녀와 만나 결혼했으나 평생 사이가 원만치 못했다. 특이한 외모와 촌스런 행동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깡마른 꺽다리 촌놈’, ‘긴 팔 원숭이’란 모욕적 말을 듣기도 했다. 35세 때 국회의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41세 때 4살 난 아들을 잃었다. 46세 때 국회의원에 재도전했다가 낙선하고 47세 때는 부통령 후보 경선에서 탈락했다. 49세 때 다시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3명을 어린 나이에 잃었다.

그의 우울증은 청년시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절정은 52세 때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남북전쟁을 치를 때였다. 한 번에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혹한 시간들에 직면하면서 그는 “하나님은 왜 나를 이런 자리에 놓아두셨나” 하며 집무실에서도 자주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참아내고, 4년간의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고 노예해방을 성취하게 됐을 때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1970년대 후반 지식인 사이에서 널리 읽힌 김동길 교수의 <링컨의 일생>

링컨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가 우울증을 이겨낸 방법은 ‘신앙’, ‘신념’, ‘유머’ 등 세가지였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는 하루 종일 성경책을 끼고 기도를 하며 살았다. 중요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먼저 기도를 통해 지혜를 구했다.

그의 독실한 신앙심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에서 잘 나타나 있다. 남북전쟁을 이기고 노예해방을 성취한 뒤 아내가 “이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그는 지친 목소리로 “이스라엘 성지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링컨의 유머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외모나 약점, 우울증을 숨기려 들지 않고 도리어 스스로 비꼬거나 희화화해 사람들을 웃기곤 했다. 유머를 통해 그는 고통을 이겨내며 정적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지지자들을 확보해 나갔다. 이런 그에게 우울증도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링컨의 우울증> 저자 조슈아 울프 솅크는 링컨이 우울증에 굴복당하지 않은 이유를 “우울증에서 벗어나려 하기보다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승화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우울증을 빨리 벗어나고 극복해야만 하는 질환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링컨은 우울증을 단칼에 없애버리려 하지 않고 함께 지내면서 고치고 극복하려고 했다. 요즘 권장되는 암 환자의 바람직한 태도처럼 말이다. 사실 그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살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작가는 이 모든 행위를 ‘승화’라고 부른다.

돌이켜보면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을 비롯, 괴테, 톨스토이, 찰스 다윈, 도스토옙스키, 키르케고르, 칼 구스파트 융 등 우울증을 겪은 위인들의 성취는 개인의 고통과 고뇌 속에서 탄생되고 숙성된 것들이다.

링컨은 아버지, 아내 등 가족·친지에게서조차 실망과 상처를 많이 입었다. 인간의 부정적 측면 즉 나약함, 저열함, 탐욕, 이기심, 폭력성 등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본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그에게 큰 고통과 절망을 가져다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관용(측은지심)을 갖게 되는 인식으로까지 승화되었다고 본다.

만약 그가 인간의 부정성에만 집중했다면 결국 요즘 말로 히끼꼬모리(은둔형 외톨이), ‘묻지마 범죄자’ 아니면 희대의 선동적 정치인이 되거나 자살로 마무리됐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극복해냈다. 대통령으로서 그가 이룬 남북전쟁의 승리나 노예해방도 마찬가지다. 만일 링컨이 ‘우리는 선(善), 너희는 악(惡)’이요, ‘북군은 승리자, 남군은 패배자’라는 이분법·이원론적 시각으로 보았다면 지금과 같은 미국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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