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같은 마음 상태 벗어나기···”덕수궁 돌담길 걷고, 에머슨 싯귀 읊조리고”
[아시아엔=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전 조선일보 기자,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 <마흔이 내게 준 선물> 등 저자] 살다보면 때때로 사막과 같은 마음, 비바람·눈보라가 치는 마음 상태가 될 때가 있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이런 상황을 빠져나오는 방법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힘든 일을 만날 때 정면대결해 싸우거나, 반대로 꾹 참고 지낼 수도 있지만, 우회해서 스스로를 즐겁게 함으로써 탈출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와 씨름하지 말고 다른 기분 좋은 일에 몰두하다보면 자연스레 해소되거나, 해결방법이 떠오르는 경험을 우리 모두는 갖고 있다. 나도 정신적으로 힘든 경험들을 하다 보니 몇가지 나만의 스트레스 탈출 방법들이 있다.
첫째 운동이다. 운동은 정직하다. 운동을 하면 울적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에 활력이 솟는다.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많이 걸으며, 동네마다 설치돼 있는 운동시설에 자주 들른다. 사무실 근처 피트니스센타도 다닌다. 운동은 일종의 ‘저축’이다. 나의 신체적·심리적 예금구좌에 잔고를 늘림으로써 유사시 힘들 때 이를 꺼내 사용할 수 있다.
두번째는 명상이다. 6~7년 전 처음 시작했는데 처음엔 5분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30분~1시간 매일 한다. 바깥 활동이 많고 외향적 성격의 사람일수록 권하고 싶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정신적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다.
세번째는 친지들과 음식 먹으면서 대화하는 것이다. 편한 얘기를 나누다보면 다른 일로 복잡해졌던 마음이 어느새 풀리는 걸 발견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이다. 나는 소주·막걸리·맥주·양주·와인 다 좋아한다. 그 음식과 분위기에 맞는 술을 먹을 때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다만 건강 문제상, 또 술로 취해 지내기에는 ‘가는 세월’이 너무 빨라 절제하고 있다. 다음날 깨어서 ‘어제 잘 마셨구나’ 정도로만 마신다.
이밖에도 책, 음악, 여행도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사우나·한증 등 목욕, 영화·드라마 보기, 음식 만들기, 텃밭 가꾸기, 애완동물과 놀기,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 등 예술활동, 바둑, 외국어 공부 등을 꼽는다.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많을수록 힘든 일에서 탈출하기 쉬워지며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정말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신이 극도로 지쳐 자율신경계가 제멋대로 노는 번아웃(burnout) 상태라면···. 십수년전 내가 잠시 우울증에 걸려 힘들 때 병원 의사는 3가지 처방을 했다. △약 △운동 △인지치료(긍정훈련)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약은 되도록 적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그것이 신체로까지 나온다면, 예컨대 불면증이나 불안증이 장기간 계속되고, 혈압이 급격히 오르는 등 신체적 이상징후가 나온다면 병원에서 주는 약처방에 따라야 한다.
마치 우리가 세균 감염 등으로 배탈이 나거나 지독한 몸살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먹어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다 빨리 낫고, 또다른 병으로 확대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자율신경계가 와해되면 이는 개인의 의지나 면역력으로 해결되기 어려우며 항우울제, 진정제, 수면제 등의 약을 통해 먼저 몸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약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약에만 의존하면 안된다. 몸의 자연치유능력을 상실해 평생 약에 의지해 살아갈 수도 있다.
운동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약의 효능을 최대화하고 빨리 낫기 위해서는 운동을 통한 신체적 건강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면 몸으로 병이 오듯이, 반대로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해지는 이치와 같다. 운동을 하면 신체가 활성화되고 기분의 좋아져 마음의 병을 빨리 낫게 한다.
의사가 내게 권한 인지치료는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라는 것이었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마음 상태를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내가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당시 나는 평소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하거나 힘을 주는 책의 좋은 말이나 구절, 시 등을 수첩에 적어놓고 울적하면 꺼내 보거나, 나 혼자 있을 때는 큰 소리로 낭송했다. 길을 걸을 때면 반복해서 외우며 다녔다. 가장 좋아했던 구절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감옥에 있지 않았다면 나는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과제, 즉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감옥에서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은 바깥세상에서 가질 수 없는 기회였다.”(넬슨 만델라,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 중에서)
만델라의 감옥은 내게는 우울증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엇도 염려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절함으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사람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성경> 중에서)
우울할 때는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해지곤 한다. 이때 이 구절은 내게 힘을 주었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서 살았음으로써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행복하게 하는 것.”(랠프 월도 에머슨, 시 <무엇이 사는 것인가> 중에서)
인생이 허무하고 삶의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할 때 읊조리면 나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할 수밖에 없다.”(괴테, <파우스트> 중에서)
친구가 모두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은
꽃 사 들고 돌아와 아내와 즐겼노라.(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 ‘나를 사랑하는 노래’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 중에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자신이 한때 이곳에서 살았음으로써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행복하게 하는 것”이란 구절을 좋아하고 힘을 얻는다고 했다.
아마 이는 우리가 현실에서 각자 스스로가 한심하고 이기적으로 보여 자책하더라도, 그 내면 깊숙이에는 그런 선한 소망과 양심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마음이 사막처럼 삭막하거나 비바람·눈보라 치는 마음상태가 될 때 달래줄 수 있는 구절들을 여러 개 갖고 있으면 좋겠다. 성경, 불경, 책, 시 구절이든 아니면 유행가 가사 한 구절이라도 말이다.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항우울제같은 약보다 훨씬 좋은 인지치료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