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로움·열등감·불안함에서 어떻게 벗어났나”

상담가는 우울증이 도리어 내 인생 후반기 건강한 삶과 자아를 위해 좋은 방어기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이번 기회에 자신의 내면에서 바라는 성숙된 인격, 바람직한 나,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자존감에 집중하라”고 권유했다.(본문 가운데)

[아시아엔=함영준 ‘길’(mindgil.com) 대표,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내려올 때 보인다> 등 저자]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한 가지 확실한 단어가 있다. 바로 ‘외로움’이란 단어다. 나는 부모, 형제 없이 자랐다. 내가 돌을 지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얼마 후 재혼했다.

워낙 어린 나이의 일이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며, 어머니 품 안의 추억도 없다. 어린 시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아무도 없는 방 안에 혼자 누워 마구 울던 모습이었다. 나는 조부모 손안에서 컸다.

약간 과장되게 표현해서 ‘태어나면서부터 단독자(單獨者)의 삶’을 타고난 터라 나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았다. 부모 없이 자란 사람 대부분이 그러하듯 내 심리 기저에는 ‘외톨이’란 생각이 단단히 박혀 있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모든 것을 헤쳐나가며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고 여겼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짊어지고, 해결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독립성, 개척성, 견인력 등 성격 면에서 긍정성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 콤플렉스, 고립, 독단 같은 부정성도 가지고 왔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6세가 되기 전 경험이 그 사람의 성격과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파했는데 적어도 내게는 맞는 듯싶다.

 어린 시절 두 번째로 기억나는 나의 성격적 특질은 바로 ‘열등감’이었다. 부모 형제가 없다 보니 열등감이 없을 수 없었다. 더구나 조부모는 나를 애지중지 키우긴 했지만 과잉보호했다. 당시 조부모는 장성한 두 아들을 모두 잃어버린 탓에 유일한 손자인 나를 외부세계와 격리,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형제자매나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어린 시절을 나는 집에 갇혀 혼자 지내다 보니 또래 아이들보다 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놀이와 운동, 대화와 인간관계 형성에서 또래 아이들에 비해 현저히 미숙했으며 이런 것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큰 열등감과 욕구불만으로 자리잡게 됐다.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지배한 또 하나의 속성은 ‘불안감’이었다. 스스로 남과 다른 비정상으로 여겼고 한편에는 무기력감이 자리잡고 있는 데다 늘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데다 연로한 조부모님들이 자주 아프셔서 혹시 돌아가시는 것 아닌가라는 걱정 속에서 늘 살았다.
 
돌이켜보니 외로움, 열등감, 불안감이라는 세 키워드가 어린 시절 내 삶을 지배했었고 장성하고서도 계속 영향을 미쳤다. 사춘기를 맞아 내 자아가 발달되면서 내 의식은 매우 비판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생활에서의 일탈 행동으로 나왔다. 공부를 등한시하고 문제아 생활을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성격적 속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환이 아니었나 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대부분 마음의 방황과 정체성 혼란을 겪게 마련이지만 나는 좀 길었다. 20대가 돼 대학과 군대생활을 거치면서도 아웃사이더로서의 나, 다른 한편으로 과잉된 내 자의식과 존재감이 참으로 불편했다.
 
대학 졸업 후 신문기자 생활을 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삶의 정상적 궤도에 진입했다. 신문기자는 내게 딱 맞는 직업이었다. 인사이더가 아닌 아웃사이더로서 온갖 삶의 현장과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며, 뭔가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내면의 욕구를 충족해주었다. 또한 결혼 생활은 ‘외톨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게 했고 내게 정서적 평화를 주었다.
 
신문기자 생활은 힘들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보람도 있었다. 나는 열심히 일했고 회사도 나를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마음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불편함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여전했다. 내 나이 마흔 후반에 접어들면서 나는 천직으로 여기던 신문기자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내 자신이나 인생에 만족하는가?
 
 이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또다시 삶의 의미와 자신에 대한 정체성 혼란이 찾아왔다. 이런 본질적 물음이 자주 나를 괴롭혔고 결국 나는 국내 정상 언론사의 중견 간부직에 사표를 내고 나오고 말았다. 기자 생활 22년째였다.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었다.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세워두고 뒤로 몰리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각오로 내 문제를 풀어보자고 다짐했다.
 
 3년 동안 나는 프리랜서로서 생계를 이어가며 글을 쓰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공직생활을 하게 돼 3년간 청와대 비서관으로 지내며 권부의 실상과 권력의 작동 원리를 경험했다. 그때 많은 실망감을 느끼게 됐다. 정부는 바깥에서 보는 것처럼 스마트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대통령을 비롯해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위만 쳐다보며 기회주의와 보신주의로 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국회의원은 행정부의 상전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나는 차라리 내가 여의도로 나가 제대로 일해보자고 생각했다.
 
누가 권한 것도, 도와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청와대에 사표를 내고 나와 서울 변두리 동네로 이사가 선거 준비를 했다. 그러나 연고나 금전, 후원 세력도 없는 1인 단기 출마는 현실성이 없었다. 더구나 한국의 정치판 생리가 내게 맞지도 않았다. 결국 8개월 뒤 나는 출마를 포기했다. 그리고 우울증이란 정신적 후폭풍을 맞은 것이었다.
 
이런 나의 인생 편력에 대해 상담가는 후한 평가를 했다.
 
“신문사를 나온 것도, 청와대를 나온 것도 본질적으로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생각됩니다. 쉽지 않은 결단이죠. 그런데 이후 우울증을 겪게 된 것은 선생님이 추구한 삶의 의미가 좌절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는 우울증이 도리어 내 인생 후반기 건강한 삶과 자아를 위해 좋은 방어기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이번 기회에 자신의 내면에서 바라는 성숙된 인격, 바람직한 나,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자존감에 집중하라”고 권유했다.상담가는 덧붙였다.
 

“선생님은 객관적으로 좋은 자질과 경력을 가지고 있는 데도 유독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그 원인과 이유에 집중해보십시오. 그리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강구하십시오. 그것은 단순한 치유를 넘어 나를 찾는 길, 보다 완전한 삶을 향한 여정이자 마음의 행로입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처음 신문기자 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길을 걷고 있다. 뚜벅뚜벅 단 한 점의 후회 없이. (출처 함영준 저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2017,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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