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이 만난 사람⑤김훈] 입을 닫으니 마음이 들린다···진보·보수 모두에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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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함영준 전 <조선일보> 사회부장, 전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비서관] “Show, Don’t Tell”(말하지 말고 보여줘라.)

군사독재 시절, 기자들은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언어의 마술사’가 돼야 했다. 되도록 주관적 의견(opinion)을 줄이고 객관적 사실(fact)만 보도해야 했다. 의미부여 없이 그냥 스케치하듯 상황을 묘사해주기만 했다.

그러나 민주화가 되면서 언어는 고삐 풀린 말처럼 자유스러워졌다. 온갖 주의·주장이 난무하고 현장에는 살벌한 구호와 욕설, 주장이 난무했다. 사실보다 의견, 객관보다 주견,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다.

김훈은 이를 괴로워했다.

“요즘 글쓰기가 어렵고 신문 읽기가 고통스럽다. 사실을 의견을 구분하지 못하고 뒤죽박죽으로 쓴다. 사실을 의견처럼, 의견을 사실처럼 말한다.”

“사실에 바탕해서 의견을 만들고, 의견에 바탕해서 신념을 만들고, 신념에 바탕해서 정의를 만들고, 정의를 바탕해서 지향점을 만들어라.”

“Show, Don’t Tell. 가장 감동적인 글은 필자가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보여줄 때 나온다.” – 미 컬럼비아대 교재 <뉴스와 보도> 중에서

세상살이 이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보다 사소한 ‘마음’이나 ‘행동’에 더 감동을 받는다. 어렸을 적 시험을 망쳤을 때 어머니가 꾸지람 대신 사준 짜장면 한 그릇, 힘든 이등병 시절 고참이 다가와 말없이 건네준 담배 한 개비, 사건기자 당시 헤매는 나를 삼겹살집으로 데려가 덤덤히 건네주던 선배의 소주잔….

김훈의 글에서는 그의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

그는 다만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독자는 무언의 울림을 안다.

김훈이 실천하는 “Show, Don’t Tell”이야말로 온갖 주장과 위선이 난무하는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인생의 경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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