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자 출신 50대 중반에 다가온 우울증 이렇게 극복했다

길은 우리의 안내자. 동행하는 길은 아무리 멀고 험해도 끝이 나오기 마련이다.

[아시아엔=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전 조선일보 사회부장]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계로 뛰어든 내게 사회문제는 늘 관심사였다. 22년 다니던 신문사를 나와 몇년간 혼자 글을 쓰고 지낼 때도 그랬다. 우연한 기회로 공직생활을 하게 돼 청와대에서 비서관으로 몇년 일한 적도 있다. 권부(權府)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민주화된 사회가 그다지 제대로 잘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은 국회의원 도전이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이 있었다. 나는 그보다 1년 전 청와대에 사표를 내고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연고지도, 후원세력도, 돈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 성격이 정치 생리에 맞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총선을 4개월 앞둔 2011년 12월 초 출마 계획을 접었다. “어쨌든 버텨보라”는 주위의 권유도 뿌리치고 눈 딱 감고 사무실을 폐쇄했다.

그때 내 나이 만 55세.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민감하고 취약한 시기였다. 후폭풍은 생각보다 훨씬 컸고,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바쁘게 살아온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던 내가 하루아침에 집에 틀어박혀 빈둥거리게 된 것이다. 세상이 재미가 없었다. 무기력과 허탈감이 밀려왔다. 오전 늦게 일어나 어슬렁거리다 점심을 먹고, 오후 되어 이제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니 참 힘이 빠졌다. ‘아, 이렇게 노인이 되어가는구나. 내가 왜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했지?’ 마음 한구석 후회와 반성이 들었다. ‘기자시절에도 정치쪽에는 눈도 안 돌렸던 내가···. 사내가 칼을 뽑아 들었으면 끝까지 가든가, 아니면 출마를 포기하더라도 좀 눈치껏 그만두지, 하루아침에 주위가 다 알도록 떠들썩하게 사퇴하는 건 또 무슨 경우야.’ 이런 생각들은 곧 창피함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됐다.

‘이제 내 미래는 어떻게 되지.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지?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기나 할까?’ 앞이 깜깜해졌다. 내 자신이 한심할 뿐이었다. 밤마다 악몽과 싸웠다. 자다가 벌떡벌떡 깨어났다. 새벽에 마치 누군가에게 목을 졸린 듯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깨어났다.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르고 벌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할딱할딱 가쁜 숨을 쉬며 깨어나곤 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나’를 신랄하게 공격하는 사람도 바로 ‘나’였다. 패배감·후회·자책·허탈감의 공격에 힘들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내 마음에 파도가 쳤다. 납덩어리처럼 무겁다가 뻥 뚫린 가슴처럼 허탈하다가, 상실감과 자책감이 밀려왔다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랫배 단전에 힘을 주며 심호흡했다. 하지만 마음이 가라앉다가도 곧 어두운 마음이 덮치면서 온갖 잡념과 우울함에 휩싸였다.

‘제가 물리쳐야 할 적은 바로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죄책감과 불안 이것이야말로 저를 파멸하려는 장본인이자 사탄입니다. 싸워 이기게 해주소서.’ 기도하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았으나 잠시 뒤면 다시 온갖 잡념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날이 갈수록 그 빈도와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그후 우연히 오바마 대통령이 열독했다는 <자기 신뢰>란 책을 보고 크게 공감했다. 바로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인이요 철학자, 사상가인 랠프 왈도 에머슨이 쓴 이 책의 골자는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믿어라”는 것이다. 에머슨은 “너를 자기 밖에서 구하지 말라”고 역설하며 크게 네 가지를 말했다.

첫째, 당신 자신을 믿어라. 즉 나 자신이 아닌 외부, 환경, 사회, 관습, 타인의 시선, 스스로를 옭매는 일관성 등을 정확히 인지하고 벗어나라.
둘째, 만물의 중심이 되라. 사람은 바뀌거나 진보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것을 살리고 그 중심이 되라.
셋째, 혼자서 가라. 세상이나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오로지 진실을 좇아서 가라.
넷째, 마음의 목소리를 들어라. 내 속의 소리, 나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찾아 그것을 하라.

에머슨은 자기반성을 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원판’까지 무시하지 말라고 했다. 항상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나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에머슨은 ‘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당신을 위해서 나 자신을 바꿀 수 없고
당신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서로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우울증 치료를 받고 회복되기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여가 지난 어느 한적한 가을날 나는 혼자 인왕산을 오르면서 보이는 풍경에 탄성을 질렀다.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렀다. 단풍은 울긋불긋 아름다웠고 마주치는 등산객들 표정은 환했다. 내 마음 한구석에 행복감이 물밀듯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
그것은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느낌이었다. 만약 이승을 마치고 천국을 간다고 해도 지금 보이는 이 완벽한 풍경과 행복감보다 더 나을 것 같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비로소 나는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책상머리에 앉아서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토요일 저녁 아내와 둘이 앉아 TV 드라마를 함께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지금 바로 여기가 천국입니다. 11월 만추 인왕산에 올라 지는 단풍의 아름다움과 내려다보이는 서울 서촌과 북촌, 아늑한 마을 풍경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지금 바로 여기가 천국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바로 이 순간, 저의 서재가, 지금 바로 여기가 천국입니다. 아멘.”

2 comments

  1. 이렇게 한 꺼풀만 벗어나고 보면 한낮 인간인 우리들인것을 인정하는 분이 소속되었던 1등 이라 자부하는 분들은 왜 이리도 거짓되고 잘못된 자신의 내면을 한번 쯤 바라보지못하며 살아가는 걸가요? 55세 만난 절망이라는 친구를 통해 깨달으셨던 진실 앞에 삶을 조금만 더 진실하게, 개인의 삶에 투영하며 살수는 없는 지에 대한 가벼운 질문을 던져봅니다. 여린 개인 의 삶앞에 연약해지신 경험이 몸담의 셨던 조직이 털끝 만큼이라도 깨달으셨으면하는 바램이 저의 욕심인가요?
    우울로 인해 더 깊은 나락으로 넘어져 살아가는 아픔은 우리 중년이 넘어가야할 바위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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