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홍 칼럼] 친절한 금자씨의 애국기부
2005년 7월로 기억한다. MBC를 떠나 잠시 쉬던 중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9월 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하게 돼 강의 준비하느라 폭염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흥미를 돋우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개봉 전부터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머리도 식힐 겸 개봉 첫날 예매했다. 영화 제목은 <친절한 금자씨>였다.
그날은 여름 장마로 연일 전국에 비가 내렸고 서울도 금방 폭우가 쏟아질 듯 검은 비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어서 우산을 챙겨갔었다.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극 시리즈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에 이은 제3탄이었다. 시리즈 형태라 출연진이 거의 겹쳤다. 주인공은 이영애와 최민식이었다.
불과 몇 년 전 K-드라마 세계적 한류열풍의 효시가 된 MBC <대장금>으로 국민배우,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이영애와
올드보이로 역시 세계적 스타로 알려지게 된 최민식이라
믿고 본 영화였다.
무엇보다 대장금에서 보여준 똑 부러지듯 야무지면서
선하기 그지없는 ‘산소같은 여자’ 이영애가 복수극에서
어떤 파격적인 변신을 할지가 더 궁금했다.
관람 결과는 놀라운 감동이었다. 여운이 오래갔다. 비너스 같은 선한 우윳빛의 이목구비, 나긋나긋 조용한 말투가 침착한 복수를 연상케 하면서 더 잔인하게 느껴졌던 이영애의 표정과 내면 연기는 오싹할 정도였다.
그런 연기를 더욱 실감 나게 했던 금자씨의 물방울 꽃무늬 원피스, 선글라스, 빨간 아이섀도(eye shadow)가 대유행한 것은 감동의 흔적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친절한 금자씨>가 성공한 것은
그녀를 <친절하지 않은 금자>로 만든 명대사 “너나 잘하세요!”였다.
올드보이보다 흥행은 못했지만 오래 기억되게 한 것은
“너나 잘하세요!”가 계속 패러디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
아닐까 싶다.
세상이 보편적 부의 현실이 되면서, 보편을 벗어나 더 많은 부를 찾으려는 이기주의가 만연해졌다. 문제는 그 이기주의가 남을 이기려는 전향적 노력을 배가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부정하고 모함하고 헐뜯고 훼방놓아서 자기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하는 악행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는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학폭과 갑질로 나타나기도 하고 정부나 일반 기업 등의 직장에서, 각종 스포츠에서, 정치권에서 나아가 언론매체에서 우리는 그것을 현실로 목격하며, 당하며 산다.
이런 현상의 요체는 자신은 전혀 그러지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다 가진 것처럼, 훨씬 잘 하는 것처럼, 개념 있는 것처럼, 죄가 없는 것처럼 행세하는 뻔뻔함이다.
신문 방송과 기타 매스콤에서 매일 지겹도록 보고 있으니
구체적인 예를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줄 말은 딱 한마디다. “너나 잘하세요!”
대한민국 스타 이영애씨의 이 명대사가 소환된 것은 그녀가 이승만기념관건립위원회에 후원금을 쾌척한 데 대해 한 매체가 황당하게 비난하고 나섰기때문이다.
<오마이뉴스>는 9월13일, ‘이승만의 과거, 이영애씨가 다시 꼼꼼하게 봤으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영애씨는 이승만이 ‘과도 있지만’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정확히 그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이씨는 왜 역대 정권에서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지 않았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또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에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그들의 목소리도 들어봐 주길 바란다”고 했다.
기부하는 이영애씨가 왜 유독 그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이영애씨는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북한의 무력 침공으로부터 지켜내 북한과 같은 나라가 되지 않도록 해주셨고 ‘자유 대한민국의 초석을 굳건히 다져주신 분’이라 감사하다는 뜻”이었다고 했다. 이영애씨는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북한 정권의 야욕대로 그들이 원하는 개인 일가의 독재 공산국가가 되었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자유가 없는 곳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고 반문했다.
어디 틀린 말이 있나? 너무도 당당한 얘기 아닌가?
이영애씨는 비단 이승만대통령 기념사업 후원뿐 아니라
불우이웃, 해외 기아 어린이 돕기 등에 후원을 아끼지 않은
기부 천사이며,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 재단에도 기부를 하고 있다.
이영애씨의 기부는 좌우니 보수진보니 하는 이념은 물론
어떤 정치적, 사회적, 또는 개인적 이해관계와는 상관없는 순수한 기부였다.
이영애씨의 기부는 애국하는 행위이다. 지난 6월 23일 이영애씨는 육군부사관발전기금재단에 성금 1억원과 선물을 기탁했다. 기부금은 2017년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순직한 고(故) 이태균 상사 아들의 교육비와 자녀를 6명 이상 둔 부사관 부부 15쌍의 양육비를 지원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이영애씨의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이며, 시아버지는 육사출신 참전군인이다. 이영애씨는 그동안 부사관학교와 군인 가족 등에 대해 후원을 이어왔다. 이영애씨는 지난 2016년에는 6·25 참전용사의 자녀들을 위해 써달라며 육사발전기금 1억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올해 1월 22일에는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피해 입은 이재민들을 위해 써달라며 50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한 바 있다.
이영애씨의 진면목이다. 이씨늘 비판한 매체는 스스로 과연 떳떳한가? 남의 순수한 선행을 정치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일이다. 이에 착하게 대응하는 이영애씨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영애씨는 “과오를 감싸자는 것이 아니라, 과오는 과오대로 역사에 남기되 공(功)을 살펴보며 화합을 하자는 의미였다”고 비판에 대해 해명했다.
왜 이렇게 물러서서 사과하듯 해명해야 하는지 답답한 것이다. 그동안의 선행으로 보면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다. 그런 그녀가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또 왜 홀로 해명하고 나서야 하는지, 그게 더 통탄할 일이다.
이승만기념관 건립추진위가 모금을 개시한 지 약 3주 만에
1만9000여명이 45억원 가까운 돈을 보내왔다고 한다. 올 들어 4·19혁명 주역들도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를 다시 봐야 한다며 이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고 일부는 건립추진위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큰 뜻에 함께하는 선한 기부자일 뿐인 이영애씨가 봉변을 당하고 해명을 해야 하는 이 상황에 사회가 침묵하고 있어 더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