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홍 칼럼-김호중②] “언론, 정치와 연예계 비판 잣대 같아야”

2022년 6월 9일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 군 복무를 마치고 소집해제된 가수 김호중이 서울 서초구청 앞에서 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수 김호중에 대해서는 앞에서 충분히 개인적 의견을 피력했다. 저지른 죄에 대한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거기엔 사법적 처벌 외에도 그를 사랑하는 팬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기대와 믿음을 저버린 것에 대한 사회 도덕적 차원의 응징도 피할 수 없다. 필자의 확고한 생각이다.

불우했던 그를 격려하는 마음으로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인기 정상까지 갔는데 하는 안타까움까지 겹쳐 더욱 분노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열 받게 하는 것은 언론들의 태도다. 왜들 그렇게 보도에 감정을 쏟아 넣는 것인가? 다른 정치, 경제 사회적 사건에서도 이랬던가 싶다.

김호중은 공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 사회적 잣대로 재단하고 비판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번 얘기의 초점은, 그렇다면 모든 공인의 경우에도 똑같은 잣대와 논리로 똑같이 심층 취재하고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호중 사건을 두고 “팬덤방탄”이라며 그의 팬덤 ‘아리수’의 김호중 옹호를 비난하고 있다. 아리수 그들 대부분은 중·노년층 여성들이다. 손자를 보는 마음으로 그동안 김호중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 팬심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모든 연예인의 팬덤과 유사하다. 아리수의 행태만 비난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치판에서도 팬덤이란 것이 있다. 이재명의 ‘개딸’이다. 아시다시피 그 개딸들의 행태는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개딸들의 행태로 이재명을 비판한 보도가 얼마나 있었나? 어쩔 수 없는 정치팬덤 현상으로 치부하는 듯하지 않은가?

그 외에도 문재인의 문빠, 조국의 조빠(속칭 洗車파), 이준석, 송인길, 김혜경, 김정숙, 김남국 등등… 수많은 혐의나 의혹에 대해 어떤 보도를 하고 있는가?

또 있다. 사람에 대해서는 아니라도 ‘투개표 부정의혹’에 대해서 어디 단 한 줄, 한마디라도 쓰고 보도한 신문방송이 있는가? 부정선거의혹의 경우 사실이든 아니든,
수많은 증거와 정황이 있고 심지어 증인까지 있다면 취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만일 취재했으며 보도를 해야지 “맞다. 아니다” 일언 반구도 없다. 부정선거의혹 제기는 정치현상이다. 쉽게 말하면 야구나 축구 등 스포츠에 도입된 비디오 판독(Instant Replay/Challenge Requested)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봐야 한다.

유권자인 국민이 헌법적 주권행사를 하고 그 과정이나 결과에 의심이 있어서 그 부분을 되돌려 보자(reply)는데 왜 이에 대해 ‘상식(常識)’으로 저지하려는가 하는 것이다.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다.

종편방송을 보면 무책임한 보도에 매번 학을 뗀다. 종합편성방송이라며 공중파와 같은 편성이 되어야 한다. 종합뉴스방송인 YTN이 있는데도 온종일 뉴스프로그램을 편성하고 그것도 소위 패널을 불러서 좌담하는데, 좌우 양쪽을 동수로 불러서 끝도 없는 편싸움만 시키고 있다.

그러니 이슈에 대한 결론이 아니라 끊임없이 충돌 갈등만 조장해서 관심을 끄는데 혈안이 돼 있다. 우리 정치를 괴퍅하게 만드는 원흉이 종편뉴스다.

신문도 일부 매체들은 오로지 같은 성향만 두둔하고, 또 다른 매체들은 모든 이슈를 양비양시(兩非兩是)로 쓴다. 비겁하기 짝이 없다.

정치에서 집토끼 산토끼 다잡으려다 다 놓친 꼴을 보는데 메이저 신문들이 그러다가 불매운동, 구독거부 운동에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아파트 문 앞에 신문 보기기 힘들어진 상태다.

인터넷이나 방송으로 뉴스를 보는 시대라 해도 굳이 활자를 읽으려는 구독자가 있었는데 그들도 말하자면 광의의 팬덤이다. 그들도 안 본다는 얘기다.

방송시청률을 높이고, 신문구독층을 넓히고, 인터넷 기사의 조회수(click)를 높이려는 상술이 지배하는 작금의 언론생태계, 그 수준이 결국 국민 수준, 대한민국 수준을 추락시키고 있다. 재앙(災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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