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연만희 유한양행 전 회장, 온화한 미소의 ‘작은 거인’

연만희 전 유한양행 회장

평사원으로 출발해 창업주의 대를 이어 국내외 굴지의 제약회사 회장직을 역임했던 연만희 전 유한양행 회장이 7월 16일 별세하셨다.

1930년생이니 향년 94세이시다. 1961년 유한양행에 입사해서 2021년까지 고문직으로 출근하셨으니 60년 동안 봉직한 것이다.

그는 고려대학교 경제과를 졸업,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내 정경대학 대선배이시다. 그리고 정경대학 회장도 선임이시다.

고려대 정경대 역대 교유회장. 초대 정세영 회장, 2대 고상겸 회장에 이어 연만희 회장은 제3대 회장을 역임했다. 필자는 11대 회장. 

연만희 회장은 올 연초에도 고려대 행사장에서 뵈었다. 많이 초췌하고 창백한 듯했지만 여전히 온화한 표정으로 다정하게 악수하며 후배들을 격려해주시는 건강한 모습이셨다.

언젠가는 작별해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 해도, 94세의 장수를 누린 축복이었다 해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배와의 이별은 안타깝고 힘들다. 나를 포함한 모든 지인들이 느끼는 사적인 감정들. 언제나 따뜻하게 감싸주고 배려해 주시던 그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같다. 

연 전 회장은 유한양행 창업자 고 유일한 박사에 이어 처음으로 회장직에 오른 인물이다. 이 놀라운 사건은 친인척을 경영에서 배제하여 사회적 공기업으로 우뚝 세워가겠다는 창업자 고 유일한 박사의 경영 철학이었으며 그런 뜻을 연만희 회장에게 물려준 것이라 하겠다.

연 회장은 그 뜻에 따라 유한양행 사장직은 한 번의 연임만 허용해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등 전문경영인 시스템을 확립하였다. 아울러 유일한 박사처럼 사회 환원에도 많은 괌심을 기울였다.

1994년부터 창의발전기금과 장학금을 모교인 고려대에 기부했으며, 8억원 상당의 유한양행 주식을 모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연만희 선배님에게 나는 영원히 씻지 못한 죄를 진 사연이 있다. 2013년 나는 CTS TV 사장에서 물러나 다시 고려대 언론대학원 강의를 준비하고 있을 때다.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대북 구호활동하고 있던 대학 후배가 찾아와서 북한에 병원 설립과 의약품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며 도움을 청해왔다.

사방으로 수소문하던 중에 유한양행이 번뜩 떠올라 그 후배 등 일행과 고문으로 계시던 연만희 선배를 찾아갔다. 방문 취지를 설명하고 대북 의약품지원 의사를 타진했다. 연 선배님은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具 후배를 믿고 지원해주겠다”고 하셨다. 연 선배님은 신속하게 사내 절차를 거쳐서 무려 3천만원 상당의 의약품을 주셨다. 그것을 후배가 하는 대북사업 법인재단에 전달했다.

그 후 나는 고대 대학원 강의로, 고대 정경대학 교우회장으로 바쁘게 쫓아다니느라 의약품 대북지원이 잘 이뤄졌는지 살피지 못했다. 그 후배도 나에게 경과를 일체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고려대 학교 행사에서 연만희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불현듯 ‘의약품 대북지원’이 떠올라 행사장 구석에서 고대 후배에게 전화해서 경과를 묻고 유한양행에 결과를 알리고 감사의 뜻이라도 전했냐고 물었다. 이에 후배는 아직 못 보내고 창고에 있다고 했다. 사정이 어쩌고 운운하며 변명을 하는 것 같아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북사업이란 것이 대체로 허황되고 북한을 들락거리며 지원금 몇 푼과, 물품지원을 하면서 다른 사업을 꾀하거나 인생놀이로 여기는 자들이 많다는 것은 나도 안다.
mbc기자 시절 북한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지원하던 유진벨 재단의 인요한(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씨를 만나서 취재했던 적이 있다. 나는 후배의 대북지원이 그런 맥락인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던 것이다.

3천만원 상당의 의약품 목록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 예컨대 대상이 누구이고 어떤 경로로 가게 되며 지원에 대한 효과는 무엇인지, 등등의 기록이 전혀 없었다. 그 후 연만희 회장을 뵐 면목이 없었다.

학교 행사에서 만나면 여전히 온화하게 웃으시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격려해주셨다.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마음 속 한편에선 “내가 지원한 약품이 잘 전달됐는가?” 하며 궁금하셨을 것이다. 그냥 나를 믿으시고 당연히 잘 됐을 터니 그것이면 족하다 하시는 모습 같아서 나는 좌불안석에 마음이 여간 아프지 않았다.

나는 어느 날 후배에게 인간의 도리가 아니고 경우가 그렇지 않다며 호통을 치고 연만희 회장을 찾아뵙고 설명을 드리라고 했다. 그게 불과 몇 달 전이다.

올해부터는 공식석상에 나오시지 않으셔서 뵙지 못했는데, 이렇게 부음을 듣게 되니 속죄하지 못한 게 너무도 부끄럽고 죄송하다.

작은 거인으로서 유한양행을 국내외 굴지의 제약회사로 일으키신 연만희 선배님.
부디 천국의 하나님 오른편에서 영생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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