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홍 칼럼] ‘박영선 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보도 파동’을 보며
필자는 기자로 35년 일했고, 대부분 정치부 기자로서 활동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당 대변인 성명 외엔 보도자료를 접할 기회가 드믈다. 그래서 부단히 기사원(記事源), 취재원(取材源)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 귀띔, 때론 노골적인 제보를 듣고 기사화한다.
내 경우도 취재원의 한마디만 듣고도 특종기사를 쓰기도 했다. 1984년 10월 여당 실력자를 만나, “정치 피규제자에 대한 3차 정치해금은 12월까진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슬쩍 짚었다. 이에 그는 “12월이면 늦지 않을까?”라며 되묻는다. 그때가 10월 중순이었다. 속으로 깜짝 놀란 나는 혹시나 이 사람이 발언을 급히 취소할까 싶어서 일부러 지나치는 것처럼 “아무튼 빨리하는 게 좋죠. 그런데 말입니다…” 하고
얼른 화제를 바꿨다.
그리고 다른 얘기로 담소하다가 곧바로 회사로 돌아와 여러 소식통과 통화하면서 보충취재를 해서 심증을 굳히고 특종기사를 쓰게 된다. 보충취재는 논문의 각주(脚註)와 같다. 내 기사의 정확도를 높이고 국민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다. ‘알려졌다’는 식으로 던져놓고 ‘아니면 말고’가 아니다. “정부 여당은 다음 달(11월)에 제3차 정치해금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3차 해금과 관련해서 12월이면 늦지 않겠느냐?고 반문함으로써 늦어도 11월 중에는 단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 다음 기사는 소식통들이 전하는 여권의 분위기와, 이미 준비해놓은 자료들, 3 차 해금 대상 정치인 명단, 해금 후의 파장, 정국 전망 등을 덧붙였다. 밤 9시 뉴스데스크 톱기사로 보도가 됐는데 다음날 조간부터 전부 톱기사로 썼다. 그들도 내 보도를 보고 확인취재를 했는데 취재원들이 이미 기사화됐으니 다들 시인하지는 않지만
부인하지를 못한 것이다.
정부 여당은 실제로 그 후 1984년 11월 30일 피규제자 99명 중 84명 3차 해금하고 1985년 3월6일 미 해금자 14명 전원(김대중, 김영삼, 김종필,김상현, 김명윤, 김덕룡, 김창근, 김윤식 외 6명)도 모두 해금했다.
지금도 정치부 기자들은 그런 식으로 취재를 하리라고 짐작한다. 며칠 전 나온 개각 관련 소식에서 일부 매체가 특종했다는 ‘박영선 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검토’ 기사도 그런 맥락의 기사다. 그런데 문제는 특종이 속보식 순간 특종이 되지 않고 확실한 “Fact 특종”이 되려면 최소한 보충취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총선 패배 후의 정부 여당,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곤혹스러움은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울 상태일 것이다. 국면 전환으로 심기일전하고 패배를 안겨준 국민에게 자성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개각과 국정쇄신이 필연이다.
문제는 개각인데 이미 사의를 표명한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의 경우 인선이 매우 쉽지 않다. 인재가 없기도 하고 윤석열 정부가 가진 인사풀이 얕은 데다 애써 후보자를 선택했다 해도 거대 야권이 쉽게 동의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상자를 스크린 하면서 야당이 동의해줄 만한 인물로 야권 출신 인사를 검토했을 것이다.
박영선 전 민주당 의원과 양정철씨가 그런 대상에 들어있었던 같다.
그리고 대통령실 어디선가 ‘전략적’으로 총선 후 국면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야권 인사 카드를 ‘전술적’으로 활용하려고 친분이 있고 영향력 있는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 슬그머니 흘려주었을(leak out) 가능성도 있다. 여론 민심. 그리고 거대 야당의 반응을 떠보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그것을 흘려 받은 기자는 반드시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런 발상이 어떻게 나왔으며, 굳이 야권 인사라면 그야말로 국민 전체가 고개를 끄덕이는 덕망이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할 터이다. 그런데 이들처럼 국면전환용 인물로 선택하라는 게 과연 윤석열 대통령의 뜻인가? 이게 되면 분명히 여야는 물론 국민이 경악할 테고 비난 여론이 들끓을 텐데 소식통은 무슨 배짱으로 이를 흘린 것일까?’를 고민하고 그래서 대통령실 소통창구를 통해 보충취재를 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서둘러 보도하고 난리가 난 후 보도를 보면 막상 “비서실장도, 홍보수석도 기타 관계자도 전혀 모르고 있더라. 말하자면 대통령실 비선조직을 통해 흘러나온 얘기”라는 것이다.
이를 보도한 매체의 사설은 이 기사가 논란이 되자, 대통령의 중대 인사(人事)가 공식조직이 아니라 누군지 알 수 없고 권한도 없는 사람들에 의해 검토된다면 정상적인 국정이라고 할 수 없다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이 내용을 취재한 기자는 어디서 들었다는 얘기인가? 출처가 어디란 것인가? 자신들이 공식조직에서 취재하지 않았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그런 내용을 무슨 근거로 특종인 양 단독보도라고 내보냈다는 것인가?
예로부터 기자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추측기사를 보도해 놓고 그것이 아니란 것이 드러나면 이렇게 쓴다. “예상과는 달리~”, “당초 계획과는 달리”, 또는 “당초 계획을 바꿔~”, “당초 검토했던 것을 전면 백지화했다”, 급기야는 이번 보도처럼 “대통령실 공식조직이 아닌 곳에서 검토하고 대통령실 공식조직은 몰랐다니~” 하며
오히려 대통령실을 비난하고 나선다.
지금 우리 언론들의 오보, 왜곡, 가짜뉴스의 상태는 심각하다. 대학의 신문방송 전공 학생들에게 언론의 정의를 뭐라고 할지, 언론과 기자의 사명과 자세가 어떤 것이라고 정의할지 안타깝다. 물론 이번 문제의 기사와 관련해서 볼 때 대통령실의 인사가 시스템이라고 했는데, 이 모양이라면 내부적으로 심각한 상태라고 본다. 대통령의 권위가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 어떻게 대통령이 항간에 하마평이 나도는 인사들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신속(?)하게 보도가 될 수 있는가?
정말로 내부에 상식과 도덕을 모르고 그 도덕의 최소한인 율법만 아는 사람들만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잘못 터득한 정치공학으로 어설프게 설계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너무 순진하거나 귀가 얇거나 최근 정치상황에 주눅 들어 초조하고 혼란스러운 것인가?
그래선 큰일이다. 고견을 주는 원로나 책사가 그렇게도 없다는 얘긴가? 나는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아서 그렇다고 본다. 소통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기자들 공식 기자회견만 소통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영원히 칭송받는 시그니처(signature)가 될 수 있었던 출근길 Door-stepping도 굉장한 소통이며, 이따금 기자들과의 오찬 만찬도 중요한 소통이다. 그런데 그런 소통을 했다는 기사가 없다. 당의 고문들도 우르르 올라왔는데 왜 식사 한 끼로 초치(招致)할 수 없었는지…한국에서의 “밥 한끼”에는 인사와 예우와 배려와
존경의 뜻이 어우러져 있다.
이렇게 지극히 답답함에도 박영선 양정철 기용설이 터져 나온 이후 갑자기 다른 이슈들이 조금 잠잠해지고, 보수진영과 마찬가지로 야권과 좌파진영도 엄청난 충격에 빠져서 지금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을 볼 때, 만약 전술적 leak-out라고 한다면 역설적으로 대성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병든 국민의 가슴은 앞으로 웬만한 처방이 아니면 백약무효가 될까 참으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