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민주항쟁 특별사진전, ’60년 한국현대사’를 소환하다
[아시아엔=구본홍 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 우리의 6월은 운명인가. 6월의 역사는 너무 어둡고 무겁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6월 25일에 발발했고 두 차례 연평해전도 6월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이런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6월 6일을 현충일로 제정해 기념하고,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 칭했다.
전쟁뿐 아니다. 왜 하필 6월인지…..
1964년 6월 3일, 학생들의 한일회담반대가 절정에 이르자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여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 6.3사태가 있었다.
그리고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 3학년 학생 박종철군이 경찰에게 연행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각종 고문을 받다 사망하였다. 이 사건이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의 열망, 직선제 개헌을 뒤집는 4.3 호헌조치를 발표한다. 이에 항거하는 학생시위가 전국으로 번졌고 그 와중에 6월 9일 이한열군 최루탄 피격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 날인 6월10일. 전국 22개 지역에서 동시에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강경 진압하는 경찰과 충돌하였다. 6월 10일 밤부터 명동성당 농성투쟁이 시작되고 6월 26일 ‘국민 평화대행진’ 으로 이어지자 거대한 민중의 힘에 놀란 정권이 항복하였다.
6월29일 ‘직선제 개헌’ 및 광범한 민주화 조치 등을 보장하는
특별선언 이른바 6·29선언을 내놓았다.
이런 민주화대장정을 우리는 총칭해서 ‘6월항쟁’이라 명명했다.
지난 20일 새벽같이 일어나 후배이자 아시아기자협회 상임이사인 이상기 AsiaN 발행인과 함께 강원도 영월로 갔다. 거기 동강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하는 “아! 6월 그날의 함성” 6월 민주항쟁 36주년 특별사진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사진전은 현재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고명진 관장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과 함께 ‘박물관협력망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하는 사진전이다. 아시아기자협회(AJA)도 참여했다.
도착해서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민주항쟁 현장의 긴박했던 장면을 순간 포착한 대형사진이 눈에 훅 들어온다. 너무나 익숙한 현장사진들이다. 그런데도 다시 보는 순간 가슴이 뜨겁게 뛰고 피가 끌어올랐다.
저 어린 학생들의 용기와 고귀한 희생으로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정착되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졌다.
사진전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현장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 귀한 사진들은 그 자체로서 역사다. 전쟁이든 시위현장이든 사진기자들은 최전방까지 다가가 상황을 카메라에 담는다.
당시 그 긴박한 상황에서 이런 결정적인 순간들이 포착될 수 있었던 것은 사진기자들의 목숨을 건 용기와 기자정신의 결과다.
글을 쓰는 기자들이 아무리 상황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해도
이런 사진 한 장에 담긴 처절한 긴박감을 전달할 수가 없다.
전시된 사진을 바라보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외침과, 부르짖음, 절규가 들려왔다.
당시 대학생 시위대는 “어용방송 폐지하라!”고 외치며 서울 정동 MBC사옥을 향해 돌진하여왔다. 그들을 취재하던 MBC취재진을 향해 돌을 던져 갓 입사해서 시위 취재를 하던 후배기자가
돌에 맞아 머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회사로 왔을 때 처참한 MBC의 현실과 어쩔 수 없었던 나 자신이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MBC는 몰매를 맞았지만 그 응징받은 상처 위에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속죄하는 듯 오히려 가슴이 후련해졌다.
이런 역사사진전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되어서
시도별로 사진박물관이 세워지고 사진전도 자주 열려서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이래저래 6월은 잔인한 달이다. 그렇지만 6.29선언으로 정리된 민주화도 6월 아닌가.
“시작은 어두웠지만 결과는 밝고 창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