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홍 칼럼] “윤석열-한동훈 독대 이후…민심은 언제나 요동치고 팬덤은 허상이다”

두터운 외투을 벗기는 것은 오히려 훈풍 아닌가? 설득은 강요, 압박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그 의중을 알고 이해하는 따뜻함과 온화함이 오히려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한다. (본문에서)

독대는 1대1 단둘이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과의 독대라면 사초(史草)를 위해 사관 성격으로 배석자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독대하는 두 사람이 메모는 할 수 있겠지만 가슴 터놓고 마음 열고 넥타이 풀고, “다 얘기해보자”고 만났는데 메모할 겨를이 있겠는가? 그리고 기록하지 않고 기억으로 안고 헤어진다면 양쪽 모두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을 프리핑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래서 배석자가 있게 된다.

진지한 대화에서는 같은 말, 같은 단어라도 분위기, 듣는 이의 느낌에 따라 뉘앙스가 다르다. 메모로 제3자에게 얘기한다면 듣는 사람들은 다 각자의 감각, 상식, 선입견, 특히 자기에게 편리한 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도 배석자가 필요하게 된다.

너무나 다른 상호인식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독대는 지극히 민감한 인화성 주제를 논하는 자리다. 한번의 만남으로 쉽게 의견이 모아질 주제도 아니고 윤, 한 모두 만만치 않은 고집이라 더욱 그렇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믿지 못하고 위태위태하게 보는 듯하고,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당 대표가 된 자신을 당정협의의 당당한 주체, 상대로 보지 않고 여전히 상하관계의 동료나 브라더로 보고 있다는 섭섭함을 느끼는 듯하다. 이런 인식이 실제라면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런 인식이라면 윤 대통령은 한 대표의 건의를 수용하기보다는 설득하려고 했을 것이다.

10월 21일 회동에서 한 대표가 지난번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반란표가 나온 것을 염두에 두고 “(표이탈) 막는데 힘들었다. 여론이 나빠지면 저로선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자, 윤대통령은 “여당의원들이 야당 안에 동조해서 그렇게 투표한다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라고 했다. 이건 대화가 아니다. 한 대표의 발언은 다분히 협박성이다. 그러니 즉각적인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예상되니까 윤대통령은 정진석 비서실장을 배석자로 두겠다 했을 것이다.

배석자의 역할

문제는 배석자의 역할과 성격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앉은 테이블을 보면 윤 대통령과 마주해서 한 대표, 정진석 비서실장이 앉았는데 한 대표는 대통령과 정면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한 대표와 비서실장 두 사람을 같은 격의 아랫사람으로 처우한 것이다. 이런 식의 자리 배치는 누구의 발상일까?

보도에 따르면 한동훈 대표가 원탁을 집요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굳이 4각 테이블에 앉은 것이라는 것인지. 만약 그게 정진석 실장의 아이디어라면 그는 대통령을 아주 잘못 보좌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설혹 대통령이 그렇게 지시한다 해도 당 대표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더러 정치적 프로토콜에도 역사상 없는 일이라는 것으로 대통령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리고 정진석은 대통령 옆에 띄어 앉았어야 한다.

더구나 사진을 보면 두 사람을 마주한 윤 대통령이 두 팔로 테이블을 짚고 얘기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윤 대통령의 실제 마음과 관계없이 대단히 위협적인 자세다. 그런 느낌을 다른 국민이 같이 느낀다면 윤 대통령의 편에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그 역할이나 위치에선 이런 디테일한 것에까지 신경을 썼어야 했다. 이런 장면이 보도되고 대화는 아무런 합의도 없이 끝났다고 하니 국민은 윤 대통령의 고집불통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된다. 왜 이 좋은 기회를 이런 식으로 날려버리는지? 

더욱 궁금한 것은 정 비서실장이 혹시라도 옆에서 윤 대통령을 거드는 발언을 했는지 하는 것이다. 윤대통령의 입장에선 한 대표의 요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 본다. 그러나 민심이란 실체가 있는 이상, 그리고 아무리 야당이 선을 넘는 공격을 한다 해도 원인제공자는 김건희 여사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한 대표의 제의에 대한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아 그것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피력해야 한다고 본다.

원초적으로 현실을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경험 많은 노련한 정치인 정진석 실장은 민심을 모르지 않을 것이고, 민심이반이 어떤 결과로 흘러갈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알 것이기 때문에 고언(苦言)을 했어야 한다. 그런 역할이 아니라면 왜 배석을 했는가? 받아쓰기를 하러 배석한 것인가?

독대는 1대1이었어야 했다

단둘이서만 만나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심탄회하게 서로 털어놓고 노골적으로 서로가 사정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그래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를 궁리해서 서로가 득이 되는 방안을 찾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리고 회담 후 손잡고 카메라 포즈를 취하면서, “앞으로 오늘 독대의 결과대로 당에서 한동훈 대표가 실행할 것이다. 그리고 회담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입장을 다시 한번 국민에게 알리겠다”고 했더라면…민심은 아마도 적잖이 요동치지 않았을까?

정치 기자 30여 년 동안 많은 정치 갈등과 그것을 풀려고 하는 숱한 여야 정치인, 때론 대통령과 당 대표 모습을 지켜봤지만 윤석열 대통령처럼 대담하지도, 명쾌하지도 않은 지도자는 처음 본다. 사즉생(死卽生)이란 시쳇말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김건희 여사도 살고 윤 대통령도 살고 한동훈과 국민의힘이 살고 국민이 편해지려면 대통령은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동훈 대표의 리더십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 대해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데는 한 대표의 정치적 미숙함이 있다. 흔한 말로 들이받아서 동격을 만들어 몸 가치를 올리고 민심이란 이름으로 대통령을 여론몰이로 압박을 한다는 것은 정치 초년의 치기다.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살아있는 권력 대통령에게 원외 당 대표가 맞짱 뜨겠다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아무리 숙고해 봐도 도를 넘는다.

노련한 정치인은 문제가 있으면 자기 속내를 감추고 협상 테이블, 또는 물밑 대화로 푼다. 특히 강력한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 두터운 외투을 벗기는 것은 오히려 훈풍 아닌가? 설득은 강요, 압박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그 의중을 알고 이해하는 따뜻함과 온화함이 오히려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한다. 한 대표가 정치적 리더로 서기 위해서는 본인부터 마음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역지사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민심은 언제나 요동치고 팬덤은 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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