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의 시선] “이탈리아여, 찬란했던 르네상스 되찾으라”

유럽 중남부에서 온 인상 좋은 자매, 그 중 동생의 남자 친구와 셋이 만났다. 내게 스스럼없이 애인이라고 소개한다. (중략) 이탈리아는 아주 흥미로운 나라다. 로마제국 덕분에 지금까지도 관광으로 먹고 산다. 베네치아나 중세 때 르네상스 부흥지로서도 명성이 자자하다.(중략) 이탈리아는 조상을 잘 둔 덕분에 오늘날에도 먹고 산다.(하략) <본문 가운데서 인용>

유럽 중남부에서 온 인상 좋은 자매, 그 중 동생의 남자 친구와 셋이 만났다. 내게 스스럼없이 애인이라고 소개한다. 외국인들의 특징 중 하나가 애인을 자연스럽게 공개한다. 공식 행사장에 와서도 “저는 이혼을 했고 이 사람은 애인이다” 그러면서 딸들을 소개한다. 딸들은 또 “이분이 우리 아빠 애인이에요” 한다. 한국적인 정서 때문인지 나만 놀란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자유연애 충분히 짐작된다.

그들은 동대문에 가야 한단다. 네팔이나 우즈베키스탄 또는 몽골인들이 동대문에 가는 이유와 다르다. 네팔 등 위 세 나라 출신들은 대부분 자국 사람들을 만나러 동대문으로 간다. 고국의 음식이 그립거나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곳이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동대문을 찾는 건 옷을 사거나 단순히 구경하기 위해서란다.

이탈리아는 아주 흥미로운 나라다. 로마제국 덕분에 지금까지도 관광으로 먹고 산다. 베네치아나 중세 때 르네상스 부흥지로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유명하다. 트레비 분수는 여전히 관광지로 전세계인을 유혹한다. 졸부 중국인들이 현금 다발을 들고 가서 행세하는 대표적인 나라이기도 한다.

천박함의 대명사 중국답게 덥다고 트레비 분수에 들어가 등목을 하지 않나? 세계적인 명품 숍에 들어가 가래침을 뱉지 않나? 별의별 몰상식한 화제를 몰고 다닌다. 빨간 옷도 즐겨 입는 나는 가끔 외국에서 “홍콩에서 왔느냐?” 또는 “중국 여행객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졸부로 보이거나 무례하기 짝이 없는 중국인으로 오해를 받는 게 싫어 “한국인!”이라고 강조한다. 남한과 북한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South Korean”이라며 “Seoul”도 힘주어 말한다.

대략 10년 전 TV 특별 프로그램에서 이탈리아의 유명 도시에 대한 내용을 방영했다. 그 도시는 오랫동안 세계 최대의 패션과 섬유산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산 제품이 넘치며 이탈리아 섬유산업이 거의 초토화되어 있다. 이탈리아의 고급 숙련직 일손들이 실업자가 되기도 한다. 이탈리아도 경제 상황이 안 좋다. 길거리 노숙자들이 많은데 대부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의 동구권에서 온 불법 체류자들이다.

이탈리아 땅이건만 그 도시의 주인 행세를 하는 이들은 중국인들이다. 이탈리아인 고용주들도 거의 중국인이다. 길거리 간판 역시 중국어가 즐비하고 음식점 간판도 중국어로 쓰여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중국의 어느 도시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다. 마치 오산 미군부대에 가보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의 LA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아름다운 이탈리아가 이 지경이다 보니 그 나라의 한 저명인사가 신문 기고란에 ‘젊은이들이여, 이탈리아를 떠나라’는 글까지 실었다. 오죽하면 참담한 현실을 그렇게까지 뼈아프게 인정했을까 싶다. 그 글은 다른 유럽 여러 나라에도 충격을 줬다. 전세계가 오늘날 저성장 시대에 들어섰고 모두가 아무도 경험하지 못해 두려운 마음으로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인간은 대개 신을 믿는다. 천국에 대한 희망의 끈을 잡고 있으면서도 죽음의 세계를 몰라 두려워 한다. 이와 비슷한 현상일 것이다. 이탈리아는 한때 세상의 중심인 허브(hub) 역할을 했다. “세계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을 만큼 강력한 제국을 이뤘던 나라다. 모든 분야에서 매력이 넘치는 국가였다. 그런 나라가 어쩌다 이토록 형편없이 와해되었는지 안타깝다.

한때 인기 TV 프로그램이었던 JTBC ‘비정상회담’의 이탈리아 대표 알베르토씨가 있다. 왜 한국에까지 왔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자신의 고국 이탈리아보다 한국의 미래가 더 밝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 이탈리아 출신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모로코 태생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매료됐었다. 네덜란드 출신 하멜의 <표류기>도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여행자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은 매우 색다르다. 어느 나라 또는 각 문화에 대한 생생한 기록에 매번 열광했다. 그럴 때마다 이탈리아의 마르코폴로를 생각했다. 그가 여러 나라에서 실제 보고 겪은 이야기들을 글로 남겼다. 고향에 돌아와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줘도 무슨 얘기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황당하게 듣던 당시 유럽 사람들이 연상된다.

지구촌 사람들은 저마다 기질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좋다. 물론 마피아도 있고 무쏠리니나 파시즘도 있다. 그렇지만 피자의 나라, 소피아 로렌의 고향, 멋진 아말피 해변이 있는 나라가 아닌가? 더이상 마치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 듯 중국이 제2의 중국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중국 때문에 인류사를 바꾼 르네상스와 메디치 가문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

이탈리아는 가톨릭 문화권이다. 그래서 수녀원 문화가 발달했다. 천연화장품 역사도 유구하다. ‘아르지탈’이나 ‘엘보라리오’가 유명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경쟁력도 있는 회사다. 천연을 추구하니 21세기 ESG 경영에도 걸맞는 체제다. 기업 경영에도 환경이나 인간 중심이 중요한 철학이 되었다.

인터넷 속도가 다소 느리고 택배 등 운송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아 오프라인 매장 영업이 활발하다는 장점도 있다. 대한민국처럼 온라인 매장이 오프라인 매장을 급속도로 잠식하는 나라도 드물다. 이탈리아는 조상을 잘 둔 덕분에 오늘날에도 먹고 산다.

1천년이 흐른 뒤 이 땅의 후손들은 지금의 우리들이 남긴 무엇을 가장 자랑스러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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