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의 시선] “아리가토”…일본 아가씨와 5천엔
상큼발랄한 처녀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단순히 길을 모르는 게 아닌 걸 경험으로 안다. 지갑을 잃어버렸거나 어떤 일로 멘붕 상태일 때 나타나는 미묘한 긴장상태였다. 순찰 도는 이에게 뮌가 번역기를 돌리며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일본 아가씨들은 한국어를 모르고 한국인은 일어를 몰랐다. 서로 영어도 먹통이었다.
카드 분실 같은 건 아니고 지하철을 타야 해 교통카드를 사고 싶은 거란다. 지방에서 올라온 화장품 제조사 대표와 외국 사업가와의 미팅차 급히 걸어가던 길이었지만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약속한 분들에게 미리 10분쯤 늦을 수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두 아가씨를 데리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그런데 교통카드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보통 편의점에서 교통카드를 파는데 의아했다.
서울역 안에는 편의점이 여러 곳 있다. 그 중에서 공항철도 가는 방향의 편의점에서만 교통카드를 팔고 있었다. 일본 여행객 아가씨들을 데리고 그 편의점으로 갔다. 일본인들이 20대 초반 같은데 영어를 몰랐다. 그저 단어 한두 개로 의사소통을 했다. “우리는 교통카드가 2장 필요하다. 1인당 각각 2만원씩 충전을 해달라.” 이러한 아주 기본적인 영어회화도 못했다. 하기야 나도 24년 전에는 그랬다.
내가 그녀들의 요구사항을 알아채고 편의점 판매원에게 교통카드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현금만 받는다는 게 아닌가? 일본 아가씨들은 당연히 신용카드가 되는 줄 알고 카드를 내밀었다가 크게 당황해 했다. 우리 뒤로 계산을 기다리는 고객의 줄이 길었다. 평소 같으면 사람들이 짜증을 낼 텐데 예쁜 외국인 아가씨들이 일어와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나에게 설명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조용히 우리를 지켜봤다.
서울역 개선사항이 또 하나 늘었다. 지난번 내가 서울역에 고칠 것을 1개 지적해 당일 바로 개선한 사례가 있다. 서울역장을 찾아가 정작 더 절실히 필요한 사항을 건의했으나 함흥차사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가 아니라 “제가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니고…” 어쩌고 하는 말을 듣고 나는 서울역장이 결코 개선에 의지가 없다는 걸 알았다. 누구든 개선할 뜻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 일을 하지 않는데도 비서까지 두고 있었다.
나는 지갑 밑천 5만원 짜리를 재빨리 꺼냈다. 만일 카드를 잃어버리면 택시라도 타야 해 비상금으로 갖고 다니는 지폐였다. 순간 내가 외국 손님들에게 밥 한 끼쯤 사준 셈 치자 생각하고 2만원 짜리 교통카드를 2장 사서 하나씩 쥐어줬다. 그랬더니 내 손을 잡고 “아리가토”를 연발 했다. 그리고 “쏘 카인드” “쏘 카인드” 했다. 전에도 일본인에게 길을 안내해 주면 아리가또 아니면 쏘 카인드만 연발했다.
가끔 외국인 유학생들이 “체리 언니 5만원만 빌려주세요” 할 때가 있다. U 국가 출신 여학생도 그랬다. 그럴 때는 그냥 준다. 딸보다 어린 외국인 여학생들이 이 낯선 나라에 와서 오죽 다급하면 내게 그런 부탁을 할까 싶어 안쓰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T 국가 출신처럼 “5백만원만 빌려달라”고 할 때는 그런 돈이 없었기도 하지만 정중히 거절한다. 돈 꾸는 게 습관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교통카드를 그녀들에게 쥐어주고 갈 길이 바빠 헤어지는 인사를 하자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스마트폰으로 일본어를 치는 게 아닌가? 한글로 ‘돈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는 글자가 번역돼 나왔다. 괜찮다고 하자 지갑에서 5천엔짜리 빳빳한 지폐를 꺼내 나더러 받으란다. 나는 원래 현금 4만원을 기부한 셈 치려 했었다. ‘절대 그냥 가지 마시라’는 의미로 손사레를 치더니 내 손을 재차 잡아끌었다.
가방을 뒤적여 내게 있던 1만원 짜리를 주었다. 그러면 일본 아가씨들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녀들이 “다같이 셀피를 찍자”고 했다. 이 또한 바디랭귀지로 해서 찍었다. 나도 그녀들과 사진을 찍었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 직전 일본인 아가씨들이 나를 껴안고 싶다고 했다.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내게 다가와 끌어안았다. 나도 두 아가씨 등을 토닥여 줬다.
참 예쁘기도 하다. 그 나이가 고운 시기여서 그런 것도 있겠으나 한국을 좋아해서 온 손님들이기 때문이다. 그 아가씨들이 제발 광화문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나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위안부 문제를 내세우며 귀가 찢어질 듯 고성을 지르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전쟁 시기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일본인 네덜란드 위안부들도 있었다. 그 문제로 네덜란드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역사를 본 적 없다.
도시나 지방, 또는 외국에서든 스쳐가는 사람들과 다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가 단 10분이라도 만나는 것은 시간과 공간으로 볼 때 결코 가벼운 인연이 아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몇 겁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이 순간 지구촌 80억 넘는 사람들 중 오직 내 인생의 어느 지점을 함께 통과하는 사람들이다. 아침을 맞을 때마다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그러면 만나는 사람이 다 소중하고 하는 일도 의미가 있다.
잼버리 행사를 마친 직후여서인지 아니면 코로나 이후 관광객들이 몰려들어서인지 외국인들이 부쩍 많아졌다. 단 하루 동안에 네덜란드, 폴란드, 러시아, 스웨덴,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해 줬다. 그간 매일 외국인들에게 한두 건씩 늘상 길 안내를 해주곤 했다. 언젠가 다섯 건 길을 안내한 적도 있다. 이번에는 자그마치 일곱 건, 신기록이다. 아예 길 안내 봉사자로 들어설까? 친한파 만드는 지름길이다.
인생 길 위에서 세상 길을 안내하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