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아시아엔=체리(이연실) 글로벌 컨설턴트, <임마누엘과 체리의 지구촌 산책> 공저자] 네팔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살아있는 여신 문화 ‘쿠마리’ 제도가 있다. 그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네팔 왕에게 어느 힌두교 여신이 찾아와 주사위 놀이를 같이 했다. 왕이 흑심을 품고 그녀를 범하려 했다. 그러자 여신이 노해서 떠나며 “장차 현신(現身)한 여신을 숭배하라”고 말했다. 그 이후 ‘쿠마리 문화’가 탄생했다.
수도 카트만두에는 로열 쿠마리가 있고 지방에도 로컬 쿠마리가 10명쯤 있다고 한다. 쿠마리는 5세 전후 소녀들 중에서 선발한다. 이목구비도 반듯해야 하는 등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일단 혈통이 석가모니쪽 가문이어야 하고 온몸에 점이나 흉터가 없어야 된다. 담력 테스트를 할 때 무서워 해서도 안 되고 절대 울어서도 안 된다.
엄선해서 쿠마리로 봉책되면 그때부터는 인간이 아니라 여신 대우를 받는다. 쿠마리는 여신이므로 절대로 흙을 밟지 않는다. 아무리 지위가 높은 왕이어도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춰야 했다. 2001년 6월 네팔 왕실 총격 사건으로 막을 내린 네팔 왕가, 그 전까지는 어떤 왕도 여신을 친히 방문해 예를 갖추곤 했었다.
쿠마리는 초경이 시작되면 여신의 지위가 박탈된다. 힌두교에서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피를 불경시 여긴다. 그래서 과거 힌두교 여성이 생리를 하게 되면 그 기간에 일체의 집안 살림도 못하게 했다. 청소, 빨래, 설거지 등…. 특히 음식을 만들면 안 된다. 부정을 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힌두교 문화권에서 여성의 생리를 불경시 하니 비극도 수시로 일어났다. 수천년 동안 희생된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인도나 네팔의 시골에서는 생리 중인 아내나 딸을 집안에 두지 않았다. 헛간이나 돼지우리 같은 곳에 따로 가두었다. 때가 되면 밥만 넣어준다. 생리가 끝나면 집안으로 들였다.
죄 없는 딸들이 코브라나 들짐승 혹은 벵골 호랑이에게 희생되곤 했다. 특히 헛간에서 코브라 같은 독사에 물려죽는 일도 빈번히 발생했다. 21세기 오늘날까지도 시골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피를 부정탄다고 여기는 문화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이 생리 기간에는 부처상에 절을 못하게 하고 제사 참여도 제한했다.
지구촌 모든 여성이 겪는 초경과 월경은 임신과 출산을 위해 조물주가 고안해낸 인체의 신비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건만 힌두교의 쿠마리에게는 신과 인간의 경계로 나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초경이 찾아오면 여신의 지위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간다. 활동 중에 월경이 시작되거나 상처 등으로 피를 흘리면 은퇴한다. 은퇴한 소녀들은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는다. 그러나 수년간 흙을 밟아본 적 없고 특별한 대접만 받았기 때문에 사회 적응에 실패한다.
학교에도 다니지 못해서 또래와 어울리지 못한다. 사회성이 결여돼 있다. 무엇보다 쿠마리 출신과 결혼을 하면 남자가 일찍 죽거나 불행해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다른 이들이 기피한다. 과거에는 쿠마리로 살았던 여자들의 경우 일생동안 혼자서 살아야 했다. 요즘은 쿠마리 생활 이후에 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에 다니기도 한다.
간혹 결혼을 하는 등 변화가 일고 있다. 네팔의 여신 제도를 선진국에서는 어린이 인권 침해로 규정해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백년간 이어온 그들만의 문화, 그것도 보수적인 네팔 사회에서는 이 제도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 자체가 전세계 모든 이들에게 생소하다.
이 전통적인 네팔 문화를 한국인 또는 지구촌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대개 비슷하다. 쿠마리 제도를 문화로 볼 때와 종교로 볼 때의 사안은 달라지고 예민한 부분도 있다. 문화로 바라보면 독특한 제도로 보고 간단히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종교로 볼 때는 서로 민감해진다. 신념의 문제는 죽음을 불사하기도 한다. 목숨 걸고 자신의 것을 주장하거나 지킨다.
네팔 힌두교 신자들은 한국에서 대부분 불교 신자라고 말한다. 두 종교 혼합형이기 때문이다. 북쪽으로 중국(티벳), 동남서로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 네팔은 남한보다 국토 면적이 넓다. 필자가 이제껏 살아봤거나 방문한 국가 중에서 가장 특별하고 개성이 강한 나라다. 자국 국민들과 과거 티벳 난민들도 섞여서 살고 있다.
2015년 네팔 대지진으로 무너진 지역에 다녀왔다. 새로 지은 학교 개교식 참석차 네팔을 방문했었다. 그때 쿠마리가 거주하는 카트만두 시내 관광명소에 현지 친구와 찾아갔다. 여기저기에 있는 힌두교 사원들도 둘러보았다. 네팔은 마치 종교의 나라 같았다. 힌두교나 불교, 티벳 불교 등 한국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종교나 정치는 개인의 신념이다. 그러니 누가 바꾸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네팔인들의 문화인 쿠마리 제도는 존중하되 생리를 불경시 여기는 건 개선이 필요하다. 인도나 네팔 등 힌두교 문화권 시골에서 생리 기간에 해당 여성을 집 밖에 가두는 건 심각한 인권 침해가 아닐까?
더 이상 아시아 어느 여성도 그러한 일로 희생 되어서는 안 된다. 초경 관련 쿠마리 자격 박탈 등의 제도는 그들의 문화이니 인정하면 되겠다. 그러나 여성의 생리를 문제삼아 집 밖으로 쫒아내는 일, 야생 동물들에게 희생되는 건 여성 인권에 해당된다. 이 문제는 인류가 다같이 고민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