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의 시선] 매력적인 터번 두른 인도 ‘펀자비’ 친구
인도 출신 친구를 네팔 친구와 함께 만났다. 그는 25년 전 서울대학교에 유학 왔다가 한국에서 살고 있다. 한국과 인도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는 국적불문 외국 친구들을 직접 만나서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한다. 이 친구는 인도 대륙 중에서도 펀잡주 출신이다. 그 주에 사는 이들을 ‘펀자비'(Punjabi)라 한다. 인도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여러가지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갈 것이다.
예전 만모한 싱 인도 총리도 바로 ‘펀자비’다. 물론 그는 시크교도다. 인도는 워낙 큰 대륙이다 보니 민족이나 언어,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서 살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 북인도, 서인도, 남인도 각 지역 출신들을 만나봐서 그들의 특징이나 역사, 문화, 종교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
내가 인도인 중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이들이 바로 시크교도들과 자이나교 신자들이다. 우선 그들의 삶과 인생관이 다른 인도인들과 닮아 있으면서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펀자비는 매우 똑똑하고 대부분 인물이 잘 생겼다. 꽃을 좋아하며 꽃 선물도 즐긴다. 인도 펀자비(3천만명)나 파키스탄 펀자비(1억2천만명) 중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이들이 많다. 광활한 면적 덕분에 음식문화가 대단히 발달했다.
인도 친구의 아내는 수학과 과학 수재로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는 강의를 하고 비즈니스도 한다. 네덜란드, 콜롬비아,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 비행기로 꽃을 한국에 들여온다. 호텔 장식용, 부케용, 선물용이 있다. 친구의 아내와 아들, 딸 모두 한국 국적이다. 그는 5년 전 서울시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우리는 인도 이야기와 파키스탄이나 다른 나라 얘기도 나눴다. 필자와 책을 같이 발간한 임마누엘 교수가 현재 일본에서 강의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줬다. 그들은 서로 오랜 지인이다.
인간의 인연이란 무엇일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옆집에 살아도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거나 관심이 별로 없는 시대에 어째서 수천 km 밖 낯선 땅에서 태어난 지구별 사람들과 이리도 다채롭게 인연이 닿을까? 나의 경우 지난 24년간 지구촌 다양한 국적 출신들을 만났다. 204개 나라까지 세어 보다가 중단한 적 있다. 그 이상 늘었고 현재까지 안 만나본 나라가 없는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도인을 직접 본 것은 오래 전 싱가포르행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었다. 영어, 중국어, 힌디어 신문과 잡지를 읽는 게 아닌가? 그 신사는 처음부터 내 기를 죽였다. 나는 그때 난생 처음 낯선 나라에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가느라 잔뜩 위축돼 있었다. 평소에는 어디에 가도 기가 죽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영어도 잘 모르면서 갑자기 영어권 나라에 가서 살게 되어 열등의식을 느꼈던 때였다.
다민족 국가 싱가포르, 그곳에 거주하는 여러 민족의 인도인 중에서도 펀자비들은 금방 표가 난다. 특히 남자들의 터번 문화가 이색적이라서 호기심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산책하다가 인도 시크교도가 크리켓 경기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경기를 마치고 젊은 선수가 터번을 풀었는데, 그 천의 길이가 거뜬히 2m쯤 되는 것 같았다.
그 젊은이는 나보다도 더 긴 머리를 나무빗으로 찰랑찰랑 빗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터번으로 감쌌다. 천을 감아서 돌리는 게 가히 예술적인 수준이었다. 시크교도는 터번 색깔이나 감는 방법에 따라 직업이나 신분 등이 각기 다르다고 한다. 이방인들은 구분할 수 없지만, 그들끼리는 즉시 알아본다고 하니 신기하다.
조선시대 무관과 문관의 복식이 다르고 자수를 놓는 동물이 다르듯 터번도 그런가 보다. 시크교도들이 인도에만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수준인 2천5백만명쯤 산다. 한국에는 시크교도가 별로 없다. 시크교도는 영어가 잘 통하는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을 선호하고 그곳에 많이 산다. 한국은 시크교도가 살기에 언어도 문화도 힘든 나라에 속한다. 인도인들은 한국에서 영어가 잘 안 통해서 무척 힘들어 한다.
시크교도는 해외에 주로 퍼져 있다. 남자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수염이 길다. 터번을 두르고 있어서 잘 모르는 이들은 그들을 이슬람교도로 착각한다. 사실 시크교는 수천년 전부터 내려온 인도의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장점만 따서 만든 종교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아무르 티무르 황제 5대 손자가 북인도를 정벌했을 때, 시크교도가 순식간에 퍼졌다고 한다.
시크교 창시자 구루 나나크는 원래 인도의 땅, 지금의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태어났다. 라호르는 펀잡 지방의 핵심도시로 인구는 1200만명이 넘는다. 파키스탄에서 두 번째 큰 도시다. 그 나라의 정치는 수도 이슬라마바드, 경제는 항구도시 카라치, 역사와 문화의 도시는 라호르가 유명하다.
필자는 파키스탄 방문 때 펀잡주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특히 멋진 유물과 좋은 식당이 많은 라호르에 다시 가보고 싶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고행하는 부처상’을 라호르 박물관에서 직접 본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하리라. 파키스탄 방문 중에 가장 유서 깊고 맛있는 식당도 라호르에 있다. 인도 펀잡주와 파키스탄 펀잡주는 서로 가족 같은 관계이다. 정치적으로만 적이다.
모든 인류의 평등함과 하나됨을 전파하고 신께 다가가기 위해 수행한다. 내면 수양을 강조하는 시크교는 15세기 후반 펀잡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시크교도에게는 매우 독특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남자들은 반드시 터번을 써야 한다. 그들은 수염과 머리카락을 자르면 안 된다. 신이 인간에게 준 머리카락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간직한다는 의미이다. 조선시대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에 해당된다. 사실 몸, 머리털, 피부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불감훼상 효지시야'(不敢毁傷 孝之始也)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사자소학>(四字小學)과 <효경>(孝經)에도 나온다.
터번을 풀고 ‘캉가’라는 나무빗으로 머리를 하루에 두 번씩 빗어야 한다. 그래서 어디에 가든 나무빗을 꼭 지참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카라’라는 팔찌를 찬다. 또 그들만의 면 속옷을 입는다고 한다. 아주 정교하고 멋진 ‘키르파’라는 단검도 지니고 다닌다. ‘용기’와 ‘약자에 대한 보호’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 여인들의 은장도 같은데, 모양이 예술적이다. 시크교도를 다룬 영국 BBC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눈을 떼지 못한 적 있다.
그들에게도 기독교의 십계명처럼 반드시 지킬 규율이 몇 가지 있다. 우상 숭배를 하지 말 것, 머리를 깎지 않을 것, 간통을 하지 말 것, 고기를 먹지 말 것(살생 금지), 술이나 담배 그리고 마약과 아편을 하지 말 것 등이다. 간통 금지 규율은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채식주의자인 인도 친구와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며 흥미로운 인도 얘기를 들었다. 세상은 알수록 더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