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의 시선] 잊혀져가는 이름 ‘라이따이한’
추석을 앞둔 9월 첫 주말, 이른 벌초를 하거나 고향을 미리 찾는 이들도 있다. 이맘 때가 되면 늘 떠오르는 베트남 형제가 있다. 호치민에 살며 나름 성공한 K씨 형제다. 안동 K 가문의 후손이다. 명문가이고 또 당시에 경제적으로 살 만한 집안의 아들 핏줄이다.
K씨는 50대 나이다. 자신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남동생이 굶은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너무 배가 고파 해변가 생선 가게에서 부산물을 주워다 끓여 먹기도 했다. 학교도 못 다녔다. 그들 두 형제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라이따이한’이다.
두 형제의 어머니는 베트남전쟁이 터지기 전 중학교 영어교사였다. 운명처럼 또는 영화처럼 한국인 장교와 사랑에 빠졌고 두 아들을 낳았다. 3년간 동거도 했단다. 아이들 아빠는 한국 육사 출신으로 조종사가 되어 비행기를 몰았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연락이 끊겼다.
그 사이 적의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로 여자는 쫓겨났다. 수십년 세월이 흐르고 비밀이 밝혀졌다. 한국 군인은 베트남전 참전 당시 이미 한국에서 결혼을 한 상태였고 딸도 하나 있었다. 그 장교는 전역하고 수산업을 해 큰 자산가가 되었다. 미국으로 이민 가 딸 둘 둔 가장으로 풍족하게 살았다. 노인이 되어서야 베트남 아들들이 그를 찾아갔다. 아들들은 길거리에서 쓰레기로 내다버린 생선을 주워 먹던 걸인이 아니라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를 통해 전해들은 안동을 무작정 찾아갔다. 놀랍게도 아버지의 고향이 있었고 문중 어른들도 생존해 계셨다. 그러나 남의 나라 핏줄이라면서 대문 안에도 들이지 않았다. 그런 수모를 겪으며 명절이 가까워지면 계속 안동에 갔다. 아버지 고향 마을에 가도 누구 하나 반기는 이가 없었다. 멀리서 바라보거나 담장 너머로 한옥을 물끄러미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고향이 무엇이고 뿌리란 무엇일까? 얼굴도 모르는 조상을 찾아간 K형제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운명의 희생양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들인들 베트남전쟁 통에 태어나고 싶었을까?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는가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K씨 형제는 안동에 가서 찜닭과 고등어를 먹으며 한국을 느끼고 조상의 고향 향기를 품는다. 수천 km 날아 다시 베트남 호치민으로 돌아간다니 가슴이 뭉클하다. 호치민에서 인쇄업과 스파, 커피 사업 등으로 성공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성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우연히 한국인 선교사가 어느 노파와 두 청년의 사연을 듣고 뿌리를 찾아주고 한글을 가르쳤다. 어느새 90세가 되신 목사님은 인천에 생존해 계신다.
둘째 아들은 경남대로 유학을 왔었다. 전역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아버지도, 중학교 영어교사였다가 한국인 아들을 낳은 어머니도 별세했다고 한다. 라이따이한 관련 뿌리찾기나 취업 또는 유학생 등을 도와주는 일에 관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라이따이한 숫자가 많다.
누구의 잘못이라느니 도덕과 윤리의 잣대는 이제 거두면 안 될까? 베트남전쟁뿐 아니라 인류 역사 어느 시기든, 어느 나라든 비극은 일어난다. 그것이 전쟁이다. 상처받고 살아온 라이따이한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면 좋겠다.
저는 라이따이한 을 비롯해 한국인 핏줄이 있으면 중죄인이 아니면 영주권을 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