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의 시선] 호주로 떠난 오코너 선생님
영국계 국제학교의 교사 중에 아일랜드 출신이 있었다. 이름이 오코너였는데 보헤미언 기질을 지녔는지 자유분방한 캐릭터였다. 다국적 학부모들을 학교에 초대해 놓은 자리에서도 유난히 튀었다. 학부모 참관 수업 때, 귀걸이를 하고 뒤로 꽁지머리를 묶은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학부모 개별 상담 시에는 매우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평소엔 장난기가 넘쳤다. 교정이나 복도에서 학부모들을 만나면 유쾌하게 큰 소리로 “굿모~~~닝!!!” 하며 윙크를 날리기도 했다. 유럽인이나 외국에서 오래 살아온 이들은 서로 윙크 정도 하며 “굿모닝!” 같이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일본 학부모들이나 고지식한 나의 경우 속으로 ‘선생님이 학부모한테 윙크를?’ 하며 놀랐다. 당황하고 괜히 부끄러워서 굿모닝 하며 인사를 나눌 순간도 놓치고 말았다. 오코너 선생님이 틀린 것인지 그런 장난기를 보고 놀라는 내가 틀린 것인지 헷갈렸다.
그는 평소 “최첨단 도시에서의 생활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훌쩍 호주로 떠났다. “초원에서 양떼들과 자유롭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자기 꿈을 찾아서 과감히 떠나는 모습과 용기가 부러웠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기질이 참으로 자유롭다.
새로운 환경이나 생활에 두려움 없는 이들이 아일랜드계였다. 미련없이 그러나 치밀하게 계획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해외에 아일랜드계가 많이 살고 있다. 이탈리아의 이무지치 실내악단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이무지치 12명의 연주자 중 1명은 꽁지머리로 묶어도 될 정도로 길었다. 아마 아일랜드계가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아일랜드 역사에도 관심이 크다. 지난번 미국 대선에 관심이 컸던 것은 바이든 후보가 아일랜드계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 살던 시절 수년간 영어 공부를 위해 자주 BBC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보곤 했다. 그 당시 방영된 아일랜드계 미국 이주사에 관한 내용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감자의 흉작과 기아 그리고 3백만명 넘는 아사자가 발생했다. 그 이후 1백만명 이상의 미국 이민 등 파란만장한 역사가 대하드라마 같다. 아일랜드계인 케네디 가문의 내력과 미국 현대사는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북미 대륙의 이민사를 보면 대부분 입은 옷에 보따리 하나 들고 떠난 이들의 생존기였다. 6.25전쟁의 흥남부두 철수같은 남루한 모습이랄까?
아일랜드와 중국인 모두 이민 초기 미국 대륙에서 상거지꼴이었다. 철도 노동자 등으로 일하는 모습이 참으로 비참했다. 미국인들이야 감추고 싶겠지만 초기 이민자들 중 굶어죽거나 얼어 죽은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이민자들은 살기 위해 새로운 땅에 갔다. 아일랜드 태생들과 여러 인연으로 한동안 교류한 적 있다. 싱가포르에서 아일랜드와 폴란드 출신 부부가 있었다. 그들과 유럽 역사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했다. 아일랜드 출신들은 대단히 현실주의자였다.
호주의 양떼 목장에서 살고 있을 오코너 선생님, 외국에서는 ‘미스터 오코너’로 불렀다. 한국 학생들이나 일부 학부모들이 한국식으로 ‘오코너 티쳐’라고 하는 모습도 그들에게는 신기했을 것이다. 스위스의 하이디 소녀나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이 새삼 그리워지는 건 나이 들수록 자연이 끌린다는데, 나도 생후 700개월이 가까워서 그런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다시 읽어봐도 느낌이 새롭다. 그의 자연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마치 한국사회를 두고 외치는 것 같다. 언젠가 카이스트 출신의 자연인이 화제가 됐다. 내가 진정 꿈꾸는 노후는 타샤 튜더(1915~2008)처럼 사는 것이다. 그런 미래가 주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