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 칼럼] 패혈증···치명률 치료시 20%·방치때 100%

                                <이미지 서울경제>

패혈증(敗血症, Sepsis)이란 말 그대로 피(血)가 썩는(敗) 병(症)으로 치명률은 방치 시 100%, 치료 시 20-35%인 무서운 병(국제질병분류기호 A40-A41.0)이다. “웃고 살면 무병장수한다”고 외친 ‘신바람 전도사’ 황수관 연세대 의대 교수(생리학)도 패혈증으로 2012년 12월 향년 6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원인은 장내 세균에 의한 간농양으로 밝혀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7년 총회에서 패혈증을 전세계 최우선 보건과제로 선정하는 결의안으로 채택됐다. 세계적으로 매년 600만명 이상이 사망하며, 국내에서도 매년 2500명 이상이 사망한다. 패혈증 사망률은 전 세계 평균 약 24%이며, 우리나라는 28.6%로 외국에 비해 높다. 특히 지난 2020년 서울아산병원 임채만 교수팀이 질병관리청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는 국내 사망률이 약 39%로 세계 평균의 거의 2배에 육박했다.

패혈증은 인체가 세균 및 기타 미생물에 감염되어 이들이 생산한 독소에 의해 중독 증세를 나타내거나, 전신성 염증 반응, 심각한 장기 손상 및 합병증을 보이는 증후군를 말한다. 상처, 호흡기, 소화기관 등을 통해 침투한 혈액 내 병원체가 숙주(宿主)의 면역체계를 뚫고 번식하는 데 성공하여 숙주를 이겨 버린 상태이다.

패혈증 원인은 미생물에 의한 감염이므로 감염 부위는 신체의 모든 장기가 가능하다. 패혈증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대장균, 폐렴균, 진균, 녹농균(綠膿菌), 클렙시엘라 변형 녹농균 등 다양하다. 폐렴, 신우신염, 뇌막염, 봉와직염(cellulitis), 감염성 심내막염, 복막염, 욕창, 담낭염, 담도염 등이 패혈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감염증이 발생한 경우, 원인 미생물이 혈액 내로 침범하여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다.

언론에 많이 보도되는 여름철 ‘비브리오패혈증(Vibrio Vulnificus Sepsis)’은 바다에 사는 비브리오 불니피쿠스(vibrio vulnificus) 세균 감염으로 발생한다. 여름철 바닷물에 피부 상처가 오염되거나, 오염된 해산물을 먹어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흔하게 일어난다. 패혈증은 어떤 균이든 감염 후 인간의 면역체계를 이겨내고 번식에 성공하면 생긴다.

면역계가 항원을 인식하고 바로 염증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짧은 잠복기를 가지고, 균종과 면역 상태, 처치법에 따라 수시간에서 수일 안에 사망하거나 만성적인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한편 완치해 원만하게 회복할 수도 있다. 큰 외상(外傷)을 입었을 때 사망하게 되는 주원인 중 하나가 패혈증이다. 즉시 상처를 소독하지 않고 방치했을 경우, 미생물이 신체 내로 침투하기 매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패혈증의 공통된 증상으로는 체온이 38도 이상으로 올라가거나(발열) 혹은 35도 이하로 내려가며(저체온증), 호흡수가 정상 호흡수에 더해서 분당 24회 이상으로 증가하며(저산소증), 혈압이 떨어지면서(저혈압) 신체 말단에 공급되는 혈액량이 저하되므로 피부가 퍼렇게 보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피부가 썩기 시작하는 조직 괴사가 나타난다. 구토, 설사, 부정맥, 장 마비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패혈증의 초기 증상으로는 호흡수가 빨라지고, 지남력(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인지력)의 상실이나 정신 착란 등의 신경학적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균혈증(세균이 혈액 내에 돌아다니는 증상)이 있으면 세균이 혈류를 따라 돌아다니다가 신체의 특정 부위에 자리잡아 그 부위에 병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혈관 투과성이 증가하여 혈관 내 알부민(albumin)이 빠져나가서 혈관 내 교질삼투압(膠質?透壓, oncotic pressure)이 낮아지며, 이로 인해 환자 혈관 내의 물이 주변 조직으로 빠져나가 쇼크, 부종 등도 생한다.

패혈증은 짧은 시간 내에 사망하는 케이스가 많으므로 패혈증 증상이 보이면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일반적인 패혈증의 경우도 사망 위험도가 20-35%에 달하며, 빠르게 더 악화되어 패혈성 쇼크가 오게 될 경우 40-60%가 사망하는 매우 치명적인 질환이다. 특히 환자가 자가면역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당뇨병 등의 기저질환을 앓고 있을 경우 사망률이 더욱 높아진다. 패혈증에 저혈압이 동반된 경우를 ‘패혈성 쇼크(Septic shock)’라고 한다.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연구팀은 패혈성 쇼크 환자를 추적 관찰한 결과 근감소증(筋減少症) 동반 시 사망률이 최대 26.5% 증가했다.

거의 대부분의 균들이 패혈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치료법은 일단 대량의 수액 공급으로 혈압 유지, 광범위 항생제로 경험적 치료를 시작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균배양 검사를 보고 항생제를 조절한다. 세균에 따라 듣는 항생제의 종류가 달라지므로 균종(菌種)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원인균을 찾는다고 항생제 투입 시점이 늦어져서도 안 된다.

매년 9월 13일은 세계 패혈증의 날(World Sepsis Day)이다. 전 세계 패혈증 관련 단체들이 모인 ‘패혈증연대’가 패혈증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2012년부터 시행해 오고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도 2012년부터 ‘세계 패혈증의 날’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지난 2018년부터는 ‘한국패혈증연대’를 조직하여 패혈증 관련 질병관리청 용역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패혈증 조기진단과 치료를 위해 국내 실정에 맞는 ‘패혈증 치료 지침서’를 개발해야 한다.

패혈증은 치명률이 높아 빠른 시간 내에 치료가 요구되며, ‘묶음 치료’가 사망률을 낮추는데 핵심적 역할로 꼽히고 있다. 패혈증 묶음치료(Surviving Sepsis Campaign bundle)란 패혈증 환자에게 젖산 농도 측정, 혈액 배양 검사, 항생제 투여, 수액 치료, 필요시 승압제 투여 등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중한자의학회는 2018년 지침을 통해 패혈증 환자에게 1시간 이내에 5가지의 묶음치료(one hour bundle)를 권고했다.

국내 19개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이 참여한 연구에서 패혈증 묶음치료 수행률이 패혈증 사망을 줄이는 주요 요인으로 나타났다. 1시간, 3시간, 6시간 이내 수행률 모두 예후와 유의한 연관성을 보였다. 2017년 미국 뉴욕주의 패혈증 관리 분석연구에서 묶음 치료가 3시간보다 빠르게 시작돼 완료될수록 환자의 예후가 호전된다고 밝혔다.

패혈증은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으며, 신체 장기 기능의 장애나 쇼크 등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사망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러나 패혈증은 치명률이 매우 높지만 사회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제대로 관리만 한다면 사망률을 줄일 수 있는 질병이다. 패혈증 발병 후 짧은 시간 내에 사망할 수 있으므로 증상이 나타나면 신속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패혈증 발생 시 반드시 ‘골든타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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