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초 게이트웨이①] 대치동 학원가 ‘마약음료’까지
필자는 1990년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연구원 제1연구실(정책연구실) 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청소년 분야의 다양한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청소년 약물남용(drug abuse) 실태와 예방대책’에 관한 연구도 했다. 또한 마약류 퇴치를 위하여 1992년 설립된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Korean Association Against Drug Abuse)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1990년 2월 뉴욕에서 개최된 ‘UN 마약류 특별총회’에서 1991년부터 2000년까지를 ‘유엔 마약류 퇴치 10개년(UN Decade Against Drug Abuse)’으로 선포하고 세계 각국이 관련 정책을 수립, 추진하도록 권유하였다. 세계 마약퇴치의 날(World Drug Day)은 1987년 UN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마약 남용이 없는 국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지정한 기념일로 매년 6월 26일이다. 여러 나라가 마약 근절과 관련된 캠페인과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년 전만 해도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마약 위험국’으로 변했다. 국내 마약범죄는 2010년대 중반 이후 급증하기 시작했다. 인구 10만명 당 마약범죄 적발 인원을 나타내는 ‘마약류 범죄계수’는 2012년 18, 2013년과 2014년에는 각각 19를 기록했다가 2015년에는 23으로 올라갔다. 이 계수가 20을 넘어서면 마약범죄를 통제하기 힘든 상태를 의미한다. 범죄 계수가 2020년 35, 2021년에는 31을 기록해 마약 범람 현상이 고착화되었다.
인터넷의 발전과 국제택배 증가 등으로 마약 유통이 확산되고 심지어 10대 마약사범까지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에서 14세 여학생이 텔리그램으로 필로폰을 주문한 지 40분만에 손에 넣어 동급생들과 투약할 정도다. 청소년 마약사범이 2017년 119명에서 2022년 481명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마약사범이 30%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그 10배나 증가한 것이다.
청소년 마약류 사범이 급증했다는 것은 국가의 마약 관리 시스템 전반이 무너졌다는 것을 말해 준다. 즉 마약범죄 대응 시스템이 약화됐다. 문재인 정부는 지속적으로 검찰의 마약 수사 부서를 통폐합해 결과적으로 국가 마약 대응 역량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갔다. 2018년 검찰 마약수사의 컨트롤타워인 대검 강력부를 폐지했다. 이어 2020년에는 대검 마약과를 조직범죄과에 통합시켰고 일선 검찰청의 강력부 6곳을 형사부로 전환시켰다.
2021년에는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의 마약수사 권한도 줄어 500만원 이상의 마약 밀수와 마약 소지 관련 범죄만 수사할 수 있다. 이에 2021년 검찰이 직접 인지한 마약범죄가 236건으로, 전년의 880건에 비해 73.2% 감소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후 경찰이 마약범죄 수사 대부분을 떠맡았지만 국제 특급우편과 특송화물, 공해상 어선 접촉을 통한 해양 밀수 등으로 반입된 마약이 다크웹, 텔리그램 등을 통해 판매되는 것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고교생에게 ‘마약음료’를 시음하게 한 사건의 피해자는 9명이다. 이 사건에 연루된 범인은 10명으로 마약음료 한 병에 필로폰 3회 분량을 탄 사실도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6일 “마약이 고등학생들에게까지 스며든 충격적인 일”이라면서 “검찰과 경찰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마약의 유통, 판매 조직을 뿌리 뽑고 범죄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라”로 지시했다.
마약은 청소년의 꿈과 희망을 파괴하고 있다. 마약은 중독성이 높아 한번 접하면 끊기 어렵다. 특히 청소년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덜 성장한 만큼 마약을 투약한 청소년의 뇌(腦) 손상이 성인 중독자의 7배에 이른다. 뇌 발달이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 시기에 마약이 침투하면 뇌 기능이 더 광범위하고 크게 망가진다. 어릴 때부터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도록 학교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마약사범에 대한 비교적 관대한 처벌이 범죄를 양산한다는 지적도 있다. 법원은 마약사범이 형사처벌 전력이 없거나 치료를 통해 마약을 끊겠다고 재판부에 호소하면 감형 사유로 참작한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1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 사범 4747명 중 절반에 달하는 2089명(44%)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마약사범 비중은 2019년 1723명(41%), 2020년 1642명(42.9%) 등 매년 증가 추세다.
1심에서 단순 벌금형이 선고되는 비중도 2019년 3.3%(138명)에서 2020년 3.7%(140명), 2021년에는 4.3%(205명)로 증가했다. 한편 풀려난 마약사범 10명 중 3명은 다시 마약을 하여 재범률은 2020년 32.9%에서 2021년 35.4%로 증가했다. 법원의 마약사범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 범죄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음이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마약사범을 엄벌하기로 유명한 중국을 포함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전 세계 35국이 마약사범에게 사형(死刑)을 집행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싱가포르에서는 작년에만 마약 밀매범 11명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싱가포르 법(法)에는 대마 밀수 규모가 500g을 넘으면 사형을 선고할 수 있게 돼 있다. 단순 마약 소지는 약하게 처벌하는 미국도 마약 공급과 유통 범죄만큼은 최고 형량을 종신형(終身刑)으로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