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 칼럼] 육사졸업식 행사 ‘꽃동산’과 ‘방풍막’

1955년 10월 4일 서울 태릉 화랑대에서 열린 육사11기 졸업·임관식에서 생도들이 분열하고 있다. 육사는 1946년 5월 1일 태릉에서 조선경비사관학교로 개교한 후 6·25전쟁으로 임시 휴교한 후 51년 10월 31일 진해에서 4년제 정규사관학교로 재개교했다. 이후 이날 첫 졸업식을 가졌다. <사진 국방일보>

[아시아엔=최승우 전 17사단장, 예산군수 역임] 육사에서 가장 큰 의식 겸 행사는 졸업식이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모시고 거행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육사 근무 시절 처음부터 육사 졸업식 행사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마침 나는 생도대장으로 부임하고 최초로 졸업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마음속에는 오래전부터 간직해 왔던 문제점 해결을 위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보았다.

서울의 동북에 있는 태능 지역은 도심보다 온도가 몇 도 낮은 것은 사실이었으며 행사가 있는 2월말과 3월초에도 추운 겨울의 칼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사관생도 시절을 회고해볼 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장시간 화랑연병장에서 부동자세로 서있어야 하니 졸업식에서 주저앉거나 쓰러지는 생도들을 목격하곤 했다.

평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사관생도가 어떻게 쓰러지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생도생활 4년 기간 중에도 내 눈으로 분명히 수차례 볼 수 있었다. 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역에서도 주저앉거나 쓰러지는 생도가 있었을 것이다. 1960년대 졸업식 행사는 그만큼 너무나 고달팠다.

1963년도 육사 19기 졸업식 행사 때 나는 키가 큰 편이라 앞줄에 서있었기에 눈동자는 굴릴 수 있었지만 몸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1시간 이상 부동자세로 서있다 보니 얼굴 코밑에 콧물 눈물로 생긴 고드름을 보았고 좌우 옆 생도를 보니 나와 같았다. 평생 처음 얼굴에 고드름이 맺히는 경험을 했는데 그 이후에는 기억에 없다. 그만큼 사관학교 졸업의식은 그야말로 혹독했었다.

고드름도 고드름이지만 이제 진달래와 개나리꽃에 관한 얘기를 하려 한다. 졸업식 날 화랑연병장 사열대에서 바라보는 맞은편 국기게양대 쪽에는 항상 진달래 개나리가 활짝 피어있었고 보기에 아름다웠다.

그런데 생도시절에는 물론 그 이후에도 잘 몰랐지만 육사 생도대장 부임 수년 전 육사 학교본부 근무 시, 본부 근무대 온실에서 관리하고 있는 졸업식 행사를 위한 준비물인 이 꽃들이 ‘졸업식 당일 만개한 꽃동산을 보여주기 위해서 비닐하우스 온실에서 일정기간 관리하고 있는 꽃’임을 알게 되었다.

하여 그 후 수년 지나 생도대장으로 부임한 나는 그 당시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행사 당일 대통령과 국내외 귀빈, 그리고 참석 하객들이 겨울철에 만개한 개나리와 진달래꽃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환상적인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행사가 끝나면 꽁꽁 언 땅에 식재된 나무들이 며칠 내 모두 얼어 죽는다는 사실을 누군들 알 수 있었겠는가?

나무도 생명인데 하루 눈요기를 위해 동사시키는 행위였고, 이는 잘 보이기 위해 상급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며, 특히 사관생도 교육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생도대장에 부임하면서부터 발동했다.

1987년도 졸업식 그 해에도 몹시 추웠다. 특히 화랑대 연병장 사열대는 ‘베르누이 효과’로 바람 속도가 빨라져서 그런지 서울 평균기온보다 섭씨 몇도 낮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동안 졸업식에서는 칼바람으로부터 대통령과 내빈들을 보호하기 위해 투명 방풍 장치로 둘러싸 바람을 막아왔다.

나는, 생도의 학부모와 하객 모두가 함께하는 자리인데 대통령 등 특정인들에게만 바람막이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추위에 떨며 수 시간 고통 속에서 행사 참관을 하는 하객들을 생각하면 방풍막 조성은 가식이며 불충이라고 여겨졌다. 나는 꽃동산 문제와 함께 방풍막설치 반대의견을 진지하게 제시했다.

1987년 3월 25일 육사 졸업식 축사하는 전두환 대통령

대통령이 국민과 추위를 함께하며 행사를 참관하는 것은 당연히 할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간 관행으로 해오던 행사라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마침 참모장이었던 선배가 내 생각에 동의를 해서 강력한 우군이 생긴 셈이었다. 하지만 학교장 휘하의 참모장이기에 나보다 훨씬 자유롭지 못했다. 더욱이 대통령 행사로서 청와대 눈치를 볼 때였기에 나는 청와대 비서실과 의전실에 개인 의견을 진지하게 전달했다.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1. 대통령과 귀빈들만 따뜻한 투명 울타리 안에서 행사 참관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훌륭한 국가 지도자는 이런 추위조차 국민과 더불어 함께함’이 기본임.
2. 생도들과 가족을 비롯한 내빈들은 추위에 떨고 있는데 대통령을 비롯한 귀빈들은 추위를 막는 투명 방풍막 속에서 편안히 행사에 임한다면 이는 ‘훌륭한 지도자의 도리’가 아님.
3. 국민들은 감기를 각오하고라도 졸업식 참석자들과 추위를 함께하는 대통령의 참모습에서 진정 ‘존경과 신뢰’를 갖게 됨.
4. 따라서 어느 대통령일 경우라도 이런 방풍 방한 조치와 아울러 개나리 진달래 꽃동산 조성의 문제를 안다면 ‘결코 허용할 리 없을 것’이며 ‘특히 모시는 입장에서는 더욱 고려해야만 할 문제’임.

그리고 나는 학교장께 진지하게 반대 의견을 계속 피력했다. 이에 선배 참모장도 내심으로는 나와 뜻을 같이했으며 그 후 청와대에서는 동의 뜻을 학교측에 분명히 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방풍막과 꽃동산 없이’ 행사를 잘 치렀다. 그 대신 나지막한 작은 석유난로가 비치되었다.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라고 보았다.

육사 등 1987년 3군사관학교 졸업식 동영상 <대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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