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 칼럼] 새해 묻고 또 묻자. “이런 경우, 나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아시아엔=최승우 전 예산군수, 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진정한 용기가 무엇일까? 진정한 용기는 자기에게 일어날 모든 손실을 감내할 각오 하에 외부로 발현되는 기질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혹자는 나를 보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울러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겁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용기에 대한 집착은 매우 컸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관한 문제를 접하게 될 때마다 항상 내 자신에게 물어 보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경우 너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질문에 대부분 나의 답변은 “아니, 자신 없다”였다. 그럼에도 필요한 때와 장소에서 용기를 발휘하기 위한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같은 의지와 행동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용기가 축적 된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용기와 두려움(비겁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를 ‘산이 높을수록 계곡이 깊다’는 자연의 이치와 같다. 즉 용기 있는 사람일수록 거기에 비례해 겁도 많다는 말이다. 용기 있는 사람도 두려움이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용기의 댓가는 자기 손해는 물론 생명의 위협에까지 직면하기 때문이다.
과거 나의 생활 체험에서 ‘자기보호 본능’에 의한 계산과 판단만 생각했다면 어떤 용기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어떤 용기에 상응해서 그만큼 두려움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용기와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그 용기는 다른 면의 두려움과 백지 한 장 차이로서 용기나 두려움(비겁함)의 선택은 ‘순간 결정물’이라 생각한다. 그 순간의 선택으로 운명의 길이 바뀌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는 두려움이 용기보다는 많은 비중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용기가 이를 지배할 수 있음은 타오르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통상 용기와 두려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이해타산 삶을 살아간다.
나도 어떤 용기를 발휘해야 할 경우 초를 다투는 경우가 아니면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하게 된다. 그때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어떤 명분이나 사명감과 실리 간의 치열한 전투이다. 이런 가운데 용자가 되느냐 비겁한 자가 되느냐는 내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용기는 어떤 피해에서부터 생명까지 버려야 하는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기에 역사상의 위대한 용자들의 행동은 말처럼 쉽게 따르기가 힘든 것이다. 용기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지기보다는 주로 짧은 순간에 발휘되는 현상이지만 평소 자기관리의 노력과 가치관을 내면에 쌓으면서 성장하고 분출되는 폭발적 현상이다. 한마디로 평소 축적되어온 ‘자기 모습’일 수 있다.
따라서 평소 마음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지만 이는 생각과 달리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항상 마음 속에서는 많은 갈등과 유혹이 들끓고 마음을 약화시키는 요소들은 잠자는 시간에도 활동하는데 이러한 어려움을 진정 극복할 경우 그야말로 용기 있는 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란 한 마디로 ‘변질이 안 되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거 존경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있을 때 나는 이러한 현상을 남의 일로 안 보고 장차 내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 했다. 사람은 누구나 계속되는 유혹의 공격에 굴복하면 그렇게 전락하고 마는 것이기에 자기 성찰, 자기 관리를 게을리하면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한 사람으로 변할 날을 분명히 맞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진정 훌륭한 사람이란 결코 아무나 되기 힘들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진정 행동으로 실천하며 부단한 자기 성찰과 노력을 통해서 자신을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와 같이 훌륭한 사람이 발휘하는 용기는 자기 수련을 통한 전문성과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 판단력, 사명감, 공익정신이 잠재의식 속에 누적되어 자신의 가치관과 정신력으로 길러져 환경에 따른 요구에 과감하게 실천하는 것이기에 진정한 용자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용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매진해야 하며 그러기에 선천적인 기질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용자가 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는 누구에게든지 항상 부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