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병 갑질’ 박찬주 대장, 이런 선배 조금만 닮았더라도
[아시아엔=편집국] 박찬주 2군사령관 부부의 공관병 갑질사건과 관련해 국방부가 7일 오전 긴급회의를 여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최근 북한의 잇단 핵 및 미사일 발사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터진 이번 일로 국민정서도 크게 격앙돼 있다. 한편으로는 이 사건이 공관병 제도 개선의 확실한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건 발생 1주일 뒤인 지난 5일 한 시민이 공관병 시절 체험담을 <아시아엔>에 전해왔다. 제보자 이국진(50·사업)씨는 1989년 6월~1990년 5월 육군 17사단(당시 사단장 최승우 소장·육사 21기) 공관병으로 근무했다. 이씨는 “최근 박찬주 대장 사건을 보며 너무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의 경우는 정반대의 공관병 경험을 해 이같은 지휘관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30년 가까이 지난 옛 이야기지만 공관병뿐 아니라 부하사병들을 친자식처럼 돌봐주던 지휘관이 당시에도 계셨다”며 “그분 지휘 하에 군생활을 보낸 분들은 그때의 좋은 추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아시아엔>은 이국진씨의 제보 내용을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공관병으로 가려면 흔히 말하는 ‘빽’(배경)이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최 장군님 이전 사단장 때부터 있었다. 내 키가 184인데 새로 부임해 오신 최 사단장님이 ‘너 개인적으로 호감이 간다. 나 하고 계속 근무하자’고 하셔서 있게 됐다.”
공관병들은 빨래라든지 지휘관 가족의 온갖 심부름도 시킨다고 들었는데···.
“당시 사단장님 가족으로 초등학생이던 딸과 중고생 오빠 둘, 그리고 약간 치매 끼가 있으신 노모가 계셨는데, 궂은 일은 모두 사모님과 가족들이 했다. 나를 포함해 다른 한명의 사병은 공식적으로 규정에 나오는 일만 하면 됐다. 농구를 좋아하던 아이들은 나를 아저씨라 부르며 함께 운동을 하곤 했다.”
지휘관보다 부인들이 더 갑질을 한다고 하더라.
“그렇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최 장군님 사모님은 정반대셨다. 당시 공관에선 사복을 입고 근무했는데, 계절이 바뀌면 사모님이 옷을 사다주시곤 했다. 식사도 가족들과 한 테이블에서 할 때도 종종 있었다.”
제대후에도 사단장을 만났나?
“물론이다. 내 결혼식 주례를 서주셨다. 쌍둥이 아들이 전방 GOP에 근무하는데, 한 내무반에서 근무하도록 배려해주신 걸로 안다. 요즘은 사업하느라 자주 못 뵙지만, 그래도 1~2년에 한번은 만나 식사하곤 한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사단장님이 60년대 후반 초급장교 시절부터 함께 근무하던 부하사병들과도 만나는 걸로 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사단장님이 사단을 떠난 후 17사 사병들한테 받은 편지가 3천통이 넘는 걸로 안다.”
공관병들은 일과 후에도 온갖 잡일을 도맡는다고 하더라.
“웬걸? 사단장님은 책을 자주 읽고 생각을 많이 하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리고 때때로 메모지 등에 만년필로 좋은 말씀을 써서 우리들에게 전해주셨다. 그 말씀들이 젊은 시절 겪었던 어려움들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됐다. 늘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그때의 좋은 경험과 기억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이씨는 전화를 끊을 무렵 자신의 제대 회식 때 일에 대해 한마디 더 하겠다고 했다.
“공관에서 회식을 했어요. 최승우 장군님하고 사모님, 장군님 애들, 그리고 사단참모 몇 분 하고요. 공교롭게도 그날 아침 군단장님이 사단장님에게 회식을 하자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사단장님께서 ‘저는 오늘 당번병과 미리 약속을 해서 참석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안 가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어요. 약속은 윗사람이나 가진 사람보다 먼저 한 약속, 선약이 가장 우선이라는 걸 늘 강조하셨죠. 저도 그대로 실천하고 있고요.”
이씨는 제대 기념선물로 최승우 사단장한테 받은 잔과 재떨이를 ‘가보’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