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 칼럼] 청춘 바친 군대서 내가 배운 값진 선물들

2016년 5월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2016년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시상식 <사진=뉴시스>

[아시아엔=최승우 전 예산군수, 전 육사 생도대장] 1961년 초, 나는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합격하고 가족과 친지들의 배웅을 뒤로 한 채 두려움 반, 기대 반 두근거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가입교를 하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기초군사 훈련은 그야말로 ‘인간 개조 훈련’으로 지금까지 내가 간직하고 살아왔던 일상적인 잔재들을 뽑아내고 새로운 가치관을 심는 훈련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1개월이었다. 특히 고된 훈련을 모두 마치고 10시쯤 잠자리에 들면 창문을 통해 어스름한 달빛은 왜 그리도 서글프게 비추이던지 스피커에서 ‘소녀의 기도’, ‘엘리제를 위하여’ 등의 애잔한 곡이 흘러나올 때면 온갖 상념이 교차하며 서러운 감정이 북받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렸다.

저 스피커를 통해서 금방이라도 어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고 저 곡들을 좋아하던 누이의 얼굴이 달빛 속에 자꾸만 어른거리면 나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숨죽여 울었다. 솜처럼 퍼진 피곤한 몸을 주체 못해 금세 잠이 들곤 했지만 그렇게 정신없이 곯아 떨어져 자다 보면 생각 같아서는 한 10분 정도 잔 것 같은데 벌써 새벽녘 이름 모를 새소리와 조용한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기상나팔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전날 훈련으로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 6시 10분 전이면 정확히 눈이 떠지던 것은 긴장이라는 시계가 내 의식 속에서 움직였던 결과다. 곤한 잠자리에서 조용한 음악과 함께 잠이 깨면 기상나팔 소리를 기다리는 동안의 불안감, 그리고 팽팽한 긴장과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선착순은 잠자는 사이 조금이나마 보충되었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야 하는 순간이다. 기상나팔과 동시에 최대한 빨리 옷 입고 군화를 신고 뛰어나가 일렬로 서서 악 써가며 번호를 외쳐대야 하는 긴박한 순간에도 나는 순번 안에 들고 내 뒤에서부터 선착순이 끊어지기를 은근히 고대하곤 했다.

아침 좀 곱게 먹게 해주면 어디가 덧나는지 식사 전까지 계속 선착순을 돌리면 온 몸은 비지땀으로 흠뻑 젖곤 했다. 뜀뛰기에 소질이 없는 사람은 계속 반복되는 선착순 때문에 탈진상태에 이른 경우도 허다했다. 나는 다행히 부모님이 물려주신 체력 덕분에 남보다 잘 뛰었는데 보통 2회 이상은 반복되지 않아서 남이 수차례의 선착순으로 비지땀을 흘리고 있을 때 불안한 가운데서도 행복감을 누렸던 기억도 새롭다.

한번은 못 뛰는 동기생을 위해서 뒤쳐져서 늦게 들어오는 전우애를 발휘했다가 속된 말로 ‘뒈지게’ 혼났다. 한편 오기로도 계속 할 생각도 했지만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그 이후로 두번 다시 뒤처지는 친구와 동참하는 일은 삼갔다. 이 역시 자신의 안일을 위한 이기심이 작동했던 것으로 지금 생각하면 창피한 일임에 틀림없다. 선착순은 무조건 남을 이기고 봐야한다는 이기심이 앞서게 되기 때문에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선착순이 체력단련에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 선착순을 조교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약도, 독소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선착순은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선착순이 생존경쟁과 같아서 우선은 내가 살고 봐야겠기에 그저 미친 듯이 일정한 궤도를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보는 로봇경주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던 기억은 선착순 와중에도 작전을 구사했다는 사실이다. 기초군사훈련 근무생도의 취향이 각각 달라서 어떤 근무생도는 1등만 남기고 십수차례 계속 반복시키는 지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3위권, 5위권, 10위권 단위로 끊는 사람도 있었는데 사람에 따라 작전이 틀리게 구사됐다.

1등만 남기고 반복시키는 독한 사람에게는 1등을 못 할 바에는 차라리 꼴지로 들어와 두번째 선착순에서 잽싸게 ‘뒤로 돌아’ 새로 달리면 십수m는 이득을 보았던 일들, 어느 사람이냐에 따라 작전을 달리 구사했던 40여년 전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이 느껴진다. 열심히 뛰었는데 바로 앞에서 끊어지고 죽을 힘을 다해서 또 뛰었는데 또 바로 앞에서 끊어지고 나면 맥이 빠지곤 했다. 그럴 때는 차라리 맨 후미가 절대 유리했다. 다시 생각하면 불합리한 일들이었지만 한편으론 배울 게 적지 않았던 추억들이다.

재미있던 일은 “0동 건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고 온다. 출발!”, 그 시각에는 그 건물 앞에도 한창 업무가 진행중인데 무조건 뛰다보면 침입해서는 안 될 타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어 초를 다투는 순간에 타지역의 하늘 같은 선배에게 붙들려 혼 나고, 돌아오면 또 늦었다고 혼나는 2중고를 겪어야 했다. 또 일과시간 이후에 불려가서 기합을 받아야 했던 경험도 있다.

당시 4학년 구대장 생도(육사18기)는 신입생들에게는 저 높은 곳의 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지당한 말씀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 자신이 문제의식을 항상 지니고 외유내강형의 성격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음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인자의 덕분으로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 시절 “군대에는 이유라는 것은 없다. 무조건 복종!”이라는 유행어는 나에게 내심 거부감을 강하게 불러 일으켰다.

“군대일수록 이유를 댈 줄 알아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이 항상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이 생각은 훗날 고급장교, 장군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조건’이란 용어는 스스로 간직하고 스스로 발전시켜야 할 개인의 고유한 가치와 의식을 말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내가 그런 주장을 자주할 수 있던 원천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가르침이었다. 유년시절 올바른 사고가 훗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음은 아마도 성장과정에서 변질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였지 않나 여겨진다.

그 시절 내가 느꼈던 문제의식은 훗날 지휘관 되어서 반드시 바로잡으려고 애썼다. 기훈 생도시절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면 전투복과 온몸은 속속들이 흙비 맞은 것같이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어 샤워 정도만 해도 피로회복이 되고 최고로 행복했다.

그러나 목욕탕 앞에 도착하면 무조건 “목욕 끝~ 1분전!”이라는 구령이 떨어진다. 그때부터 좁은 목욕탕 내부는 처절하게 치열한 몸놀림으로 분주하다. 머리의 흙조차 제대로 씻지 못한 상태인데 “목욕 끝~ 30초전!” 구령이 또 떨어진다. 목욕탕 수용공간을 고려해서 들여보냈어야 하는데 적절한 통제도 없이 한마디로 엉망이다. 질서유지도 교육일 텐데 말이다. 샤워꼭지가 10개라면 우선 10명씩 편성해야 하고 소요시간은 최소한의 여유를 줘서 판단해야 하고 아무리 짧게 해도 옷 벗고 군화 벗는 시간 1분, 비누질 샤워시간 1분, 마무리 30초, 옷 입고 군화착용 1분 등 질서를 유지한 상태에서도 3분 이상은 소요되는데 기분 내키는 대로 “1분전~!”, “30초전~!” 하면 아무리 목욕을 훈련과목(목욕은 훈련과목이 될 수도 없다)으로 한다 해도 성과가 있을 수 없다.

“긴장 조성도 시와 때가 있어야지 목욕하는데까지 이래서야 되나? 내가 상급생도가 되거나, 훈육관이 되면 절대 이런 일은 없애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곤 했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대대장 시절 목욕탕 관련 교육은 다음과 같이 했다.

“훈련기간 중의 목욕이라 해도 첫째, 목욕은 피로회복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 목욕을 훈련으로 실시하지 않는다. 둘째, 목욕시간은 목욕탕의 내부 수용 공간, 내부시설에 맞게 인원 편성을 하라. 20명이 적정인원인데 40명을 넣어서도 안 되며 수도꼭지가 20개인데 인원을 40명 넣어서는 더욱 안 된다. 셋째, 샤워나 목욕시간은 짧은 휴식과 에너지 보충시간으로 합리적인 시간을 부여하라. 휴식과 긴장을 풀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교육성과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기본적으로 샤워는 최소한 10분, 목욕은 20분 정도는 줘야 한다. 이런 것도 모두 교육에 속한다.”

시간과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망각의 습성이 있게 마련이다. 항상 마음속에서 자신을 돌보거나 자기 성찰을 게을리한다면 인간은 주위환경의 영향과 스스로의 변화에 의해 변질되기 쉽다는 평범한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이와 함께 내가 명심했던 일은, ‘내가 훗날 영향을 미칠 어떤 위치에 가면 그런 불합리한 일들은 반드시 시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의식들 덕분에 훗날 지휘관 시절의 성과들은 그 옛날 품었던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서 변질 안 되고 진화된 결과였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이 모두가 유전적 요인과 함께 최초 마음먹었던 생각이 변질되지 않기 위한 나의 각별한 노력이 합쳐진 결과라고 나는 지금도 굳세게 믿는다. 이런 일들은 평생 진행되며 진화될 것이란 믿음 또한 나의 오랜 신념이자 내가 견지하고자 하는 삶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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