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 이끌어준 50년 전 인왕산 뭇별들

“1971년 수경사 중대장 근무 시 인왕산 중턱에는 내 자신이 ‘생각하는 바위’로 명명했던 넓고 평평한 약간 경사진 바위가 있어 새벽 2~4시경 북악산 인왕산 순찰을 돌고 나서는 그 바위에 누워서 하늘의 총총한 별을 보았다. 대기 오염이 없던 당시에 별이 총총히 빛나던 새벽하늘은 황홀할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웠다.”<본문 가운데>

“부모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계산이나 대가없이 무조건 베푸는 것이었다”

[아시아엔=최승우 전 예산군수, 예비역 육군소장] 나는 20대 젊어서부터 인생 좌우명을 ‘나 자신을 알자’로 정했다. 그리고 어느새 8순을 넘기며 종종 내 삶을 돌이켜보게 된다. 부끄러운 시간이 많은 가운데, 남기고 싶은 일들도 있다. 이 글은 길게는 50여년, 짧게는 20여 년 동안 내 몸과 마음 속에 생각과 행동으로 체화(體化)되어온 내 자신의 한 조각이다. 

나는 내 출생(出生)을 기적 중 기적이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와 관련된 일상의 마음가짐은 현실이 마음에 들건 안 들건 항상 겸허하게 받아들여 만족하고 있다. 이는 지난 수십년간 보다 진화된 모습으로 내 삶속에 큰 비중을 차지하며 굳건히 자리잡아 왔다.

과거는 기억된 현재이고 미래는 기대되는 현재라는 말을 믿기 때문에 현재, 과거, 미래의 인간관계를 비롯해서 각종 많은 경험요소 들에 대해 연관도 시켜보고 예측도 해보며 나름대로 반추해 왔다.

그렇다보니 지난 일들은 모두 현재로 이어지는 전환점 이었거나 현재로 오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과거에 고민으로 여겼던 문제도 되돌아보면 모두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따라서 현실을 더욱 적극 수용하고 보다 성숙한 변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성장 소멸하기에 행복 속에 불행이 있고 불행 속에도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됐다. 불행 속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내 생각과 기준만으로 판단했던 현실의 불만족이나 불행이, 미래의 ‘행복의 씨앗’일 수 있고 비록 현실의 행복일지라도 장차 ‘불행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음양의 변화원리와도 상통한다.

누구나 한치 앞 미래를 모르고 살고 있다.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과거와 현재는, ‘살아왔고 살고 있기에’ 확실히 인식하고 잘 알고 있지만 미래는, ‘어떤 기대와 희망일 뿐,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쌓여있다. 미래는 ‘기대되는 현재’일 뿐이다.

내가 인간관계를 매우 중요시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약자에 대한 어떤 대가없는 배려 모습’에서 체득한 가르침 덕분이다. 나는 부모님이 소작인들이나 하인들에게 행동실천으로 베푸시는 모습들을 보고 느끼며 성장했다고 자부한다.

그 가르침은 한 마디로 계산이나 어떤 대가없이 무조건 베푸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피부의 때는 별로 신경 안 쓰지만 마음속 때를 없애는 일에는 집중적인 노력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옷이나 피부에 묻은 오물은 어떤 방법으로든 없애는데 집중 노력했던 반면, 안 보이는 마음속 오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더 들수록 마음속 오물 제거에 최우선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날 건강을 위한 신체 근육 강화에 지나칠 정도로 전념했지만 60대에 접어들면서 무형의 가치인 마음의 근육 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나는 ‘생각’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비교적 많이 해왔다. 로봇군인이 아닌 ‘생각하고 고민할 줄 아는 군인’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사관생도 시절 싹이 터서 일찍이 초급장교 시절이후 군 생활기간 중 계속 외쳐왔다. 그래서 진정한 강군 육성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시간, 노력과 인내가 요구되는 ‘자율적 복종심 유발’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즉석 효과는 있지만 생명력이 짧은 무조건적이고 강압적인 ‘타율’ 보다는 생명력이 강한 ‘자율’이야말로 일단 궤도에 올라 정착되면 ‘강군육성의 굳건한 기초 확립’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단순히 시키는 것만 겨우 하는 부려먹기 좋은 기계화된 인간 육성보다는 깨어있는 자율적 복종심으로 어떤 위기에도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는 조직원으로의 육성 관리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평소 조직 관리와 지휘통솔 면에서 이를 역점 실천했기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관계에서 신뢰의 생명력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에는 과거 위관장교 시절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1971년 수경사 중대장 근무 시 인왕산 중턱에는 내 자신이 ‘생각하는 바위’로 명명했던 넓고 평평한 약간 경사진 바위가 있어 새벽 2~4시경 북악산 인왕산 순찰을 돌고 나서는 그 바위에 누워서 발끝 시야에 펼쳐진 아름다운 청와대 전경을 비롯한 서울시 야경과 하늘의 총총한 별을 보았다. 대기 오염이 없던 당시에 별이 총총히 빛나던 새벽하늘은 황홀할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웠고 오늘날 생각해보면 아마도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우주공간이었다.

내가 왜 태어났을까 하는 사실부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현실적으로 내 나름대로의 부대지휘와 관련된 일들, 현안 문제와 미래에 대한 일과 관련된 많은 생각 등 내 자신만의 여러 다짐과 약속을 스스로 했던 장소였다. 그렇기에 내게는 매우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고 특히 그 이후, 항상 생각을 더욱 깊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랜 군 생활 기간 중에서도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기본자세 특히, 자칫 무시하기 쉬운 하급자들에게 대한 언행도 각별히 유념하는 자세를 견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와 관련, 피부나 육체의 상처는 약 바르거나 수술로서 치료된다지만 마음의 심한 상처 일수록 일평생 품고 가야하는 치유하기 어려운 무형의 깊은 상처이기에 역시 언행에 각별히 유념해 왔으며 이런 기본자세는 앞으로도 내 삶속에서 항상 유지하고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나는 20대 젊어서부터 인생 좌우명을 ‘나 자신을 알자’로 정했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그냥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내 자신을 알려고 노력하며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으며, 이것 역시 평생 과제로 삼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제자 간의 문답에는 참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화가 있다.

제자가 “선생님은 자신이 누군지 아십니까?” 라고 묻자 소크라테스는 “알기는 알겠는데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는데 깊은 참 뜻을 알 수 있어 참 다행스럽다. 그래서 철학의 시조 탈레스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내 몸에 체화(體化) 돼온 이 감사의 삶이야말로 ‘내 평생 계속 유지하고’ 나아가 ‘행동실천으로 지켜나가야 할’ 나의 소중한 가치이며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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