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전상서”···6.25 참전 지미 대위가 밴플리트 장군 부인께 쓴 편지

제임스 밴플리트(오른쪽) 장군과 아들 밴플리트 주니어. 1952년 3월 한국에서 찍은 것으로 밴플리트 장군 외손자 매크리스천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밴플리트 주니어가 아버지(밴플리트 장군)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는 장면이다.

[아시아엔=최승우 전 육군 17사단장, 예산군수 역임] 8년전인 2013년 7월 12일 미국 워싱턴 알링턴국립묘지를 방문했다. 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찾아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과 아들 뱀플리트 주니어 부자 묘소에 헌화·참배하며 감사와 함께 명복을 빌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 의회 상하양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밴플리트 장군을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부른 바 있다. 밴플리트 장군은 미 8군사령관 재직기간(1951년 4월?1953년 3월), 대한민국 국방의 기틀을 다지고 또한 필자의 모교인 육군사관학교 설립의 초석을 마련했다.

육사 교정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 나는 생도 시절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밴플리트 장군의 아들 제임스 밴플리트 주니어 지미는 6.25 한국전 당시 해외 근무를 끝낸 직후라 다시 해외 근무를 할 의무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전쟁 중인 한국 전선을 택하여 자원했다.

한국 전출 명령을 받은 후에 어머니에게 보낸 지미의 편지다.

사랑하는 어머니

이 편지는 군인의 아내에게 바치는 편지입니다. 눈물이 이 편지를 적시지 않았으면 합니다만… 저는 자원해서 전투비행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전투 중에 B-26 폭격기를 조종할 것입니다. 저는 조종사이기 때문에 기수(機首)엔 폭격수, 옆에는 항법사, 후미에는 기관총 사수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야간비행을 할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싸우고 있으며 드디어 저의 미력한 힘이나마 보탤 시기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저를 위하여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위급한 상황에서 자유 수호를 위해 국가로부터 소집된 나의 승무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고, 아직 가정을 이뤄본 적도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저의 의무입니다.

어머니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들 짐 올림

밴플리트 아들 지미의 비행기는 1952년 4월 북한의 순천지역에서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격추당해 실종되었으며 밴 플리트 대위는 그 후 2년 뒤 전사자로 공식 판정받았다.

그해 부활절을 맞아 밴플리트 대장(당시 8군사령관)이 한국전선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군인들의 가족들에 보낸 편지다.

“(前略) 저는 모든 부모님 심정이 제 심정과 같으리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최선을 다해 국가에 대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처럼 ‘이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後略)”

미국 알링턴국립묘지 한국전 참전 기념비 동판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한국전 당시 미국 젊은이 5만4246명이 전사했다. 그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 전혀 만나본 적도 없는 국민들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쳐 싸웠다. 그들 중엔 미군 장성 아들 142명이 있다. 그 가운데 35명이 전사했다.

영국 수상을 지낸 윈스턴 처칠은 영국 폭격기 조종사들을 추모하는 현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전쟁에서 이렇게 적은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빚진 적은 없었다.”(Never in the field of Human conflict was so much owed by so many to so f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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