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 칼럼] 옛날 군대 ‘테니스 볼보이’ 지금도?
[아시아엔=최승우 전 17사단장, 육군 인사참모부장, 예산군수 역임] 필자가 사단장 취임 4개월 후인 1989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해서 한 말이다.
“부시 대통령과 테니스를 쳤는데 볼 보이가 없더라!”
노 대통령 딴에는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한 것처럼 얘기를 하자, 군 지휘부는 거기에 장단 맞추듯 “당장 테니스 칠 때 볼 보이를 없애라”는 지시 공문을 내려보냈다. 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전체 참모회의 때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연대장 시절이던 1983년에도 이미 볼 보이를 없앴다. 우리 사단에는 부임 초부터 사단장이 취지를 설명했기 때문에 볼 보이는 이미 없지만 이런 지시가 내려왔기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서 말하는 것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미 앞서 1978년 필자가 대대장 근무 시절 사단에서 테니스대회를 할 때였다. 볼 보이들이 볼을 다룰 때, 로봇같은 자세로 볼을 다루도록 돼있었다. 볼을 들어 왼손으로 우측팔목을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는 볼을 수직으로 들고 팔목을 수평으로 펴며 공손하게 던지게 했다. 그것도 한번 볼을 튀기고 본인 라켓에 얹힐 정도로 던지는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동작과 다름 없었다. 그때 나는 젊은이들에게 어처구니 없는 일을 시키는 볼 보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구한말 양반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종들 시켜 공을 차게 하지 양반이 왜 힘들게 땀 흘리며 저러느냐”라던 얘기가 있었다. 테니스를 할 정도라면 얼마든지 스스로 볼을 줍고 운동할 수 있는 체력이 있다. 볼을 받아 테니스를 하려면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운동하는데 부하들에게까지 폐를 끼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나는 대대장 시절에 마음 속으로 이같은 폐단을 반드시 없애겠다는 생각을 굳게 했다. 이후 연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볼 보이’를 없애도록 했다. 무조건 없애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다.
첫째, 테니스 경기는 기술도 중요하겠지만 체력단련이 목적이다. 따라서 볼은 자기가 뛰어가서 줍든 걸어가서 줍든 각자 개인이 볼을 줍는다.
둘째, 병사들의 자유시간을 박탈하지 말자. 계급 높은 윗사람이 테니스 칠 때 볼 보이 차출은 부조리 행위라고 생각했다. 테니스를 치려면 일과시간 이후나 공휴일에 칠 텐데, 그때는 병사들의 귀중한 자유시간이다. 그 시간대에 볼 보이 사역은 병사들에게 개인시간이 박탈당하는 결과가 된다. 자유시간이라 해도 병사들 개인별로는 그 시간에 밀린 세탁, 편지 쓰기, 기타 개인활동을 해야 할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시간 여유가 없을 때인데, 더구나 볼 보이는 주로 힘없는 이등병 계급에서 차출된다. 그러면 그들의 자유시간은 계속 유보되고 만다.
더구나 볼 보이는 부동자세로 굳은 표정으로 서 있어야 하니 고달프기 짝이 없는 일이다. 볼도 자기가 던지고 싶은 대로 던질 수 없고 부자연스런 자세로 던지는 일을 반복해야 하니 스트레스는 또 얼마나 쌓일까. 이런 생각을 정리해 실천에 들어갔다.
“이제부터 볼 보이는 없앤다. 스스로 줍고 체력단련하자. 부득이 필요할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하되 그때도 병사들의 쉴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최소화하기 바란다.” 이것이 나의 지시였다. 군에서 ‘부조리 제거’란 얘기는 귀가 따갑게 많이 듣는데 가장 큰 부조리는 상급부대, 상급자로부터의 잘못된 지시다.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는 사소한 것 같지만 고칠 일이 한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