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의 군대 이야기②] “사단장 떴다” 하니 비상이 걸렸다
[아시아엔=최승우 예비역 소장, 전 예산군수] 군에서 “사단장 떴다” 하면 비상이 걸린다. 어디로 갈 것이냐? 무슨 일로 가느냐? 초미의 관심사다. 그러나 그렇게 우왕좌왕 사단장의 일정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들은 엄밀하게 따져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일 뿐이다. 사단장의 방문이 환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기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지휘관의 공식적인 예하대 방문은 1주일 전에 미리 통보되는 것이 보통이다.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무슨 1년에 한번 있는 초도순시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이런 때 사소한 잘못으로 인해 군생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진짜 해야 할 일은 뒷전에 두고 눈앞에 보이는 페인트 칠, 대청소, 특히 외형치장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상급자가 하급부대를 방문하는 것은 칭찬과 격려를 통해서 하급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상급자의 지휘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또 업무청취와 부대 현황 파악, 그리고 상급부대가 예하대를 지원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아울러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상하간의 신뢰감을 조성하고 상호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인데 상급자가 하급부대를 방문해서 무슨 꼬투리나 결점을 잡아보겠다는 목적을 가졌다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언제나 힘은 밑에서부터 나와야 하고 그 힘의 근원이 하부구조인 부하들인데 이들을 괴롭게 하고 무시하는 것은 상급자 자신을 위해서도 대단한 손해요 전체를 파괴하고 약화시키는 이적행위와도 같다.
중대장이나 대대장의 경우 판공비가 그야말로 쥐꼬리 만한 액수라서 그 돈으로 페인트 값을 충당한다는 것은 정말 안 될 말이다. 그러니 지휘관 노릇 한번 제대로 하려면 계급별로 십수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빚까지 지는 것이 당시에는 예사였다. 군에서 일일이 다 지원이 안 되니 당장 필요한 경우에는 지휘관 개인이 사비를 들여서 급한 대로 비용을 부담하고 보는데 문제는 군과 부하들의 인식은 그런 일을 모두 당연한 것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큰 불평 없이 우리의 열악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를 천직으로 삼고 보람과 긍지를 안고 어렵게 살아가는 직업군인들과 가족들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이런 헌신적인 생활 속에서 우리 군이 유지, 발전되어 온 것이다.
필자는 1990년대 초 사단장으로 재직했다. 당시 예하부대를 방문할 때면 의례히 사단장의 예하부대 방문에 대한 개념을 주지시켰다. 그 요지는 이랬다.
“사단장의 방문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라.” 예를 들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페인트칠, 물 뿌리는 행위, 과도한 청소, 병력이동 통제, 평소보다 지나친 각종 통제행위 등을 금지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까지도 일일이 설명했지만 이것이 정착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다. “나는 청소 감독관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가는 하급부대 주변에 쓰레기나 오물이 수북이 쌓여 있다 해도 나는 그저 “이 부대에는 무슨 사정이 있어 청소를 못한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지나다녔다.
나는 “사단장 방문 일주일 전에 통보되었는데도 감히 이것들이 이렇게 나를 무시해? 괘씸한…” 이렇게 옹졸한 생각을 하지는 않는 사람임을 강조하였는데도 이 사실을 하급자들이 사단장의 진심이라고 믿게 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 어떤 경우에는 지나는 주변에 라면봉지 우유봉지 등이 널려 있는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일부러 못본 척 시선을 피했다. 만약에 내가 그런 오물들을 모르는 척 하지 않고 순간이라도 유심히 살펴보았다면 나를 의식한 수행원들이 마음에 많은 부담을 가질 것은 물론이고 그 지역을 담당한 청소당번은 무슨 고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하부대를 방문했을 때는 그 부대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먹는 음식문제만 해도 그렇다. 하급부대 담당자들은 그날 사단장이 먹어야 할 음식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걸 목격하면서 이 문제는 꼭 시정을 해야만 할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군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좋다는 음식은 사서먹든 얻어먹든 두루 섭렵하게 된다. 그런데 음식에 한이 맺혀 굶주린 사람이 아닌 한 내 앞에 차려진 한 끼의 음식을 어떤 경우든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먹어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급자들에게 전혀 신경 쓰지 말라는 주의를 주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설렁탕이나 해장국 등 간편한 음식으로 메뉴를 의무적으로 정해주기도 했다.
이유인즉 그날 사단장 방문 행사 때문에 수고한 부하들에게 밥값 내지는 수고비조로 약간의 격려금을 주어야 하는데 내가 먹는 식사를 비싼 음식으로 준비하면 내가 지출해야 하는 돈도 거기에 상응하게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위해서라도 간소하게 준비하도록 했다. 사단장으로 부임한 초기에는 설렁탕, 깍두기, 김치 등으로 음식 메뉴를 확실히 지정 해주고 방문 당일은 일부러 아침을 굶었다. 가서 아주 맛있게 먹어주어야 준비한 부하들이 기뻐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초청받은 손님이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다면 그것은 준비한 당사자들에게는 최고의 선물로 여겨질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많은 시간을 지내다 보니 부하들이 사단장을 위해서 스스럼없이 라면도 끓여 내오고 할 정도로 부담을 가지지 않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제 서야 내 마음속에서는 ‘이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대선배로 대장까지 지낸 분이 갑자기 격오지 소부대를 방문했다. 부대에선 준비할 여유가 없어서 라면을 끓여 내왔다. 그분은 “라면을 좋아하며 참 맛있게 먹었다”고 칭찬을 했다. 그런데 그 후 방문하는 곳마다 라면 접대를 받게 되어서 한동안 질리도록 라면을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